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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릉은 단릉으로 조성된태조의 계비 신덕왕후의 능이다. 처음에는 현재 영국대사관 자리에 능역이 조영되었으나, 태조가 승하한 후, 원비의 태생인 태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신덕왕후는 평민으로 강등되고, 현재의 위치로 천장되었다. 따라서 왕릉제인 병풍석이나 난간석은 봉분에서 사라지고, 4각 장명등, 고석, 상석 등만이 원래의 것으로 추정된다. 그 중 장명등은 고려시대 공민왕릉의 양식을 따른 것으로 조선시대 능역의 가장 오래된 석물인 동시에 예술적 가치가 높다.정릉의 공간은 일반 왕릉의 영역이 직선축을 이루는 데 비해, 자연 지형에 맞추어 절선축으로 조성되어 있다. 능역 입구 금천교의 모습은 우리나라 자연형 석교의 조형기술을 볼 수 있으며 재실터 양 옆으로 서 있는 느티나무의 보호수도 살펴 볼만한 가치 있는 역사경관이다

역사탐방

극진히 사랑했던 현비가 갑자기 승하하자 태조는 도성 안인 현 덕수궁 뒤편 현재 영국대사관 자리로 추정되는 곳에 능역을 조성하고 강씨 봉분 우측에 훗날 자신이 묻힐 자리까지 함께 마련하여 능호를 정릉으로 정하였다. 아울러 능의 동편에 흥천사(興天寺)라는 절을 지어 재궁으로 삼고 능침사찰로 하였다.그러나 잘 조성된 정릉은 신덕왕후의  왕자인  방번과 방석이 왕자의 난을 거치면서 살해되고  태조의 원비 신의왕후의  다섯 번째 소생인 태종이 즉위하면서부터 푸대접을 받았다. 태종은 정릉의 능역 100보 근처까지 주택지로 정하여 세도가들이 정릉 숲의 나무를 베어 저택을 짓는 것을 허락하고,청계천 광통교(현재의 광교)가 홍수에 무너지자 능의 석물 중 병풍석을 광통교 복구에 사용하였으며, 그 밖에 목재나  석재들은  태평관을 짓는 데 쓰게 하도록 하였다.  정릉이 있던 이 일대는 지금까지 정동(貞洞)으로 불리고 있다. 그로부터 260여년이 지난 1669년(현종 10) 신덕왕후는 현종에 의해 복권되면서 그 능이 현재와 같이 재조성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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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위한 국문법 1

아주 오래전 창작에 뜻을 두고 공부했던 국문법을 정리했던 것인데 지금도 많이 바뀌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두서없이 정리한 노트를 그대로 옮긴 것이니 그저 참조만 하시기 바랍니다.

 

■ ' 생각건대 '를 = ' 생각컨대 ' 로 -

   ' 용납지 않다 '를 = ' 용납치 않다 '로 쓴다.

 

"고등학교.사범학교" 등은 고유명사이므로 붙여쓰며 "등굣길.최솟값.우윳빛" 등의 사이시옷은 사라지게 된다.


또한 -

화병(火病).대가(代價).소수(素數) 등은 현실적으로 사이시옷을 쓰고 있는 점을 고려해 - " 홧병.댓가.솟수 " 로 바뀐다 . 


* 예전에는 -

' 기술자 ' 에게는  "장이 (미장이.유기장이.대장장이...)" 로  그 外에는 - " 쟁이(골목쟁이.담쟁이 덩굴..) " 로 사용했다.

그러나 - 장이/쟁이가 하나로 통일된다

 

어떻게 통일 ?쟁이로 통일 된다 .

 

* 우리나라를 지나치게 겸양법을 써서" 저희나라 " 라고 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표현.

단, 자신이 포함한 가족 또는 소그룹 단위는 낮춰 - " 저희가족.저희 팀 "으로 말하는 것은 무방하다. 


1.축하드립니다  = 축하합니다

2.질문을 던졌습니다 = 질문을 했습니다.

3.엄청 큽니다 = 매우 큽니다.

4.맑은 날씨를 보이겠습니다 =

  맑은 날씨가 되겠습니다.

5.어두울 전망입니다 =

  어두울 것으로 예상됩니다.

(전망이라는 말 자체가 긍정의 뜻이므로 )


문제 나갑니다 ~


" 배워주고 있습니다 " 는

  어떻게 표현해야 옳을까요 ?


답 :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 -고 말하는 부부는

일종의 위선에 쌓인 부부다 " 가 맞는가 ?


1.물건을 겹겹이 포개어 놓다의 "쌓다"


2.둘러서 보이지 않게 하다 의 "싸다"


그러므로  " 싸다 " 가 맞다.

 

" 싸이다 "와 " 쌓이다"의 구분

 

노조원들이 정문 등 공장 곳곳 쌓아 놓은 폐타이어에 불을 질러 공장일대가 시커먼 화염에 쌓여 있다.


쌓이다


* 쌓이다는 쌓다의 피동형이다.

많은 물건을 차곡차곡 포개 놓는다 "는 뜻.


ex). 이 집의 담장은 붉은 벽돌로 쌓여 있다. 

.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를 치우느라 고생이 많다.


" 기술,업적 등을 거듭하여 닦거나 이루다" 는  뜻도 있다.


ex) .이번 인사에서 현장경험을 쌓은 사람들이 승진되었다.

      .인생을 달관하는 수양을 쌓으시오.


싸이다


* 싸이다는 싸다의 피동형이다.


종이나 보자기 등의 속에 넣어 보이지 않게 한다" 는 뜻 .


보기) 보자기에 싸인 물건이 몹시 궁금하다.

호수 가운데에 있는 섬이 짙은 안개로 싸여 보이지 않는다.


* "헤어나지 못할 정도로 뒤덮이다" 라는 뜻

 

보기) 그녀의 얼굴에 수심이 싸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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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7대 왕 세조(世祖 1417~1468, 재위 1455∼1468)와 세조의 비 정희왕후(貞熹王后) 윤씨(1418∼1483)의 무덤이다. 1970년 5월 26일 사적 제197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왕릉 최초로 왕과 왕비의 능을 서로 다른 언덕 위에 따로 만든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 형식을 취하였고, 두 능의 중간지역에 하나의 정자각(丁字閣)을 세웠다.세조의 유언에 따라 봉분 내부 돌방을 만들지 않고 회격(灰隔; 관을 구덩이 속에 내려놓고, 그 사이를 석회로 메워서 다짐)으로 처리하였다.무덤 둘레에 병풍석을 세우지 않았으며, 이전에 병풍석에 새겼던 12지신상은 난간석에 새겼다. 또 능역 아래쪽에는 홍살문에서 정자각에 이르는 길인 참도(參道)가 생략되어 있다.이렇게 간소하게 능을 조성함으로써 부역인원과 조성비용을 감축하였는데 이는 조선 초기 능제(陵制)에 변혁을 이루는 계기가 되었고, 이런 상설제도는 이후의 왕릉 조성에 모범이 되었다. 능 주위에는 문인석·무인석·상석·망주석·석호(石虎)·석양(石羊) 등의 석물이 배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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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쓰기 6

 

 

■ 군더기는 과감하게 없애라 

 

* 글은 앞 문장과 뒷문장이 서로 맞아야 한다.

 

* ..했다,..다 ,않는다. 없다,들어왔다.규칙성이 일정하게 된 글은 읽으면서 답답함을 느낀다.

 

그러므로 - 

유연성이 있어야 한다.

절의 길이를 조절해야 한다

 

* 문장의 길이가 짧았다 길었다 해야 한다 .

 

수필의 제목 

 

.지나치게  감각적,자극적인 제목, 감상주의적 제목, 작위적으로 길이가 늘어난 제목들은

대개가 실명론적 허명론의 소산이다.

 

예) 매화향기를 소재로 해서 쓴다면 -

 

 " 어떤 향기 "로 하면 = 유명론적 제목.

 " 매화 향기 "= 실명론적 제목.

 " 은은한 향기 속에 묻혀 = 허명론적 제목.

 

* 치장과 화장이 지나친 제목은 시사성

함축성이 저속한 격을 지니게 되기 때문이다. 

 

* 수필은 서두에서 좌우 된다.

 

* 不而殺六通 (일불이살 육통) 

  한 가지 잘못으로 모든 것이 실패

 

 귀납적 방법

 

구체적 사실로부터 명제나 법칙을 이끌어내고 특수한 것에서 보편적인 것을 찾아내

일반적 결론을 유도하는 것.

 

 연역적 방법

 

한 가지 일을 놓고 다른 것을 연상해 생각하게

하고,경험 한 것이 아니더도 논리적으로

"그럴 것이다 "라는 필연적 해석을 하는 것.

 

* 수필문장의

  마무리 부분은 여운이 담겨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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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조의 5번째 아들이자 인조()의 아버지로 1632년(인조 10) 왕으로 추존된 원종( 1580∼1619)과 부인 인헌왕후() 구씨(1578∼1626)의 무덤이다. 1970년 5월 26일 사적 제 202호로 지정되었다. 인조반정(1623)으로 아들 능양군인 인조가 왕위에 오르자 대원군에 봉해졌고, 인조 10년 (1633) 원종의 칭호와 함께 그의 무덤을 장릉으로 불렀다 . 원종의 무덤은 원래 양주군에 있었으며 1622년(인조 즉위) 흥경원()이라는 원호()를 받았다. 1627년(인조 5) 현 위치로 옮겨졌고, 1632년 원종이 왕으로 추존되면서 장릉()이라는 능호를 받게 되었다. 한편 1626년 조성된 인헌왕후의 무덤은 현 위치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있다가 1627년 원종 옆으로 이장되었다.왕릉과 왕비릉이 나란히 놓인 쌍릉으로, 병풍석이나 난간석은 설치하지 않고 봉분 아래로 얕은 호석()만 둘렀는데 이는 추봉된 다른 왕릉의 전례를 따른 것이다. 각 능 앞에 상석이 놓여 있고, 상석 좌우로 망주석 1쌍이 있다. 봉분 주위로 석양()·석호() 각 2쌍을 교대로 배치하였으며, 봉분 뒤쪽으로는 3면의 곡장(; 나지막한 담)을 둘렀다. 봉분 아랫단에 문인석 석마() 각 1쌍과 장명등, 그 아랫단에 무인석·석마 각 1쌍이 있고, 능원 밑에 정자각 비각 수복방 홍살문 재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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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쓰기 5

언제나 표준어를 사용해야 한다.  
표준어를 사용한다 해도 문장과 어울리지 않으면 과감하게 쓰지 말아야 한다

 

누가 누구에게  쓴 것인지  문장의 글속에 나타나야 한다.

 

* 무생물체를 생물체처럼 생각하고 감정이 없는 사물을 감정이 있는 것처럼 쓰는 비유법을 {활유법}이라 한다.

 

* 주장을 하거나 요구하거나 설명하고 훈계하는 서두는 특별한 형식을 제외하고는 바람직하지 않다.

 

" 무엇은 어떻게 되기 마련" " 무엇은 어떠한 법이다 "라는 식의 훈계조나 설명조는 서두에 쓰지 않는 것이 좋다.

 

예)"인생은 누구나가 한 번 태어나면 만났다 헤어지게 마련이다"

이런 표현은 - 누구나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진부한 얘기인 것이고,신선미를 잃고 있다.

 

서두에서 한시의 명구 잠언.혹은 남의 시를 인용하는 것은 적절하다.

 

(작품의 내용이나 품격이 명구를 인용할 만큼의 글일때는 문제없다)

그러나 인용하기 좋아하는 글일수록 섣부른 지식 자랑이 된다.

 

그러므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한 두 구절 일부분으로 그쳐야 한다

 

대화체로 시작되는 부분은 지문으로 풀어 써야 한다.

 

)"그렇게 큰 구두는 없습니다" 십여 년 전의 일로 기억된다.

245사이즈의 구두를 찾던 내게, 제화점 주인은 점잖게 무안을 주었다를 -

"십여 년 전의 일이다. 245사이즈의 구두를 찾았더니 그렇게 큰 구두는

없다며 제화점 주인은 점잖게 내게 무안을 주었다" 로 고쳐 써야 한다.

 

대화체 형식은 소설의 형식이다 .

 

* 서두가 논리적문체로 시작이 되면 =

  내용이 사회적. 비평적. 성격을 띤다.

 

* 서두가 부드럽게 시작되면 =

  정서적 분위기의 글이 된다

 (초심자의 경우 대부분

  서두가 논리적 성격을 띤다는 점이다)

 

* 서두의 시작은

  글 분위기에 맞게 담담하게 전개돼야 한다.

 

* 어느 경우이든

  문맥이 통하고 무리가 따르지 않아야 한다.

 

* 자기체험을 쓰는 글이므로 시간대에 따라

  쓰기 보다는 재구성을 해야 좋은 글이 된다

 

* 하루의 일과 중 어느 부분을 시작으로 하든 - 서두.전개와  마무리 부분이 짜여지면 된다.

 

문맥은

   문장이 제자리에 놓여 있을 때라야 통한다 

 

문단과 문단이 통하지 않을 땐

접속사로 잇지만,그렇게 하지 않고도 서로 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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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성북구 석관동에 있는 조선 20대왕 경종과 그의 계비 선의왕후 어씨의 능 조선 20대 경종 (재위 1720∼1724)과 그의 비인 선의왕후의 무덤이다. 경종은 희빈장씨의 소생으로 어렸을 때부터 몸이 약하여 왕위에 오른지 4년만에 세상을 떠났다. 일반적으로 쌍릉은 좌·우로 조성하지만 이 무덤은 앞·뒤로 무덤을 조성한 상하이봉릉(上下異封陵)이다. 이처럼 앞·뒤로 만든 것은 풍수지리설에 의한 것으로 효종과 인선왕후의 무덤인 영릉에서 처음 나타났다. 왕릉에는 무덤 둘레에 병풍석을 세우지 않고 대신 무덤 주위에 12칸의 난간석을 설치했는데, 난간석의 기둥에는 십이간지가 방위에 따라 문자로 새겨져 있다. 난간석 밖으로 망주석·장명등·문무석과 말·양·호랑이가 있다. 무덤의 석물 배치와 양식은 명릉과 같이 규모가 작고 간소한 후릉제도를 택하였다.  왕비릉의 석물 배치는 왕릉과 같으나 무덤 뒤에 담을 두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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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릉(健陵)은 정조(正祖)와 비(妃) 효의왕후(孝懿王后) 김씨(金氏 淸風)의 능(陵)으로 경기도 화성시(華城市) 태안읍(台安邑) 안녕리(安寧里)에 있다.조선 제22대 왕 정조( 1752~1800, 재위 1776~1800)와 부인 효의왕후() 김씨(1753~1821)를 합장한 무덤이다. 정조의 아버지로 사후에 왕으로 추존된 장조 (祖, 사도세자)와 헌경왕후 홍씨의 합장묘인 융릉()과 함께 1970년 5월 26일 사적 제206호로 지정되었다. 건릉은 봉분 안에 2실을 갖춘 합장릉이다. 정조는 조선의 제22대 왕으로 휘는 산(祘), 자는 형운(亨運),호는 홍재(弘齋)다.  영조의 손자로 아버지는 장헌세자 (莊獻世子: 思悼世子)이고 , 어머니는 영의정 홍봉한(洪鳳漢)의 딸 혜경궁(惠慶宮: 惠嬪) 홍씨(洪氏)이다. 1759년(영조 35)에 세손에 책봉되고, 1762년(영조 38) 2월에 좌참찬 김시묵(金時默)의 딸 효의왕후(孝懿王后)를 맞아 가례를 치렀다.  이 해 5월에 아버지가 뒤주 속에 갇혀 죽는 광경을 목도해야 했다.   1764년(영조 40)  2월 영조가 일찍 죽은 맏아들 효장세자(孝章世子)의 뒤이어 종통을 잇게 하였다.

인적이 드물어 뭔가 불쑥하고 나올것 같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솔밭길과 숲길 그렇게 긴 오솔길을 지나고 환하게 밝은 곳에 짜잔하고 화려한 왕릉이 보인다.

사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조 선 왕 릉은 대부분 비슷하지만 우거진 나무들 속에 숨겨있는 보물 (세계문화유산)을 보기 위해 걷는 오솔길과 솔밭길의 아름다움은 백날 이야기 해봐야 직접 가보지 않고선 느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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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쓰기 4

 

수필의 서두는 작품성을 좌우 한다

 

. 서두가 독자를 끌어들이게 할 것인가 

 

. 서두는 차분한 말로

  정적 분위기를 주는 게 효과적이다.

 

. 서두의 목소리가 높아서는 안된다.

 

경수필의 경우 

요구하거나 교훈적이어서는 성공적인 수필이 안된다

 

서두의 표현에 있어서 유의할 사항 "

 

. 첫 구절 시작이 지시대명사 "그"  " 어느" 로 시작 되는 것은  금물.

 

* 왜냐하면 -

 

이런 대명사의 시작은 "막연한 상황"을 말하는 격으로 사실 개념과 떨어져 실감을 주지 못한다.

따라서 독자를 끌어들이기에 부적당하다.

 

1인칭대명사 ""로 시작하는 경우에는 -

특별한 상황이 아니고는 서두에 붙는 "나" 는 군더기일 뿐이다

 

수필은

   문장 주체가 이미 "나 " 이기 때문이다 

 

* 예외일경우 - 


작자 자신을 강조해야 할 경우.

막연히 지시대명사 " 그 "로 시작 되는 것은 처음부터 원칙에서 벗어난다.

 

* 문장을 분식(분칠하듯 꾸미는 것)하는 것은 서두에서 금기사항

 

 어떻게 써야 하는가 ?

 

.모범이 될만한 좋은 글을 많이 읽어야 한다.

.소재를 만났을 때 수필은 시작된다.

.일정한 형식이 없다.

.도덕적 가치 개념을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조그만한 얘기거리 밖에 안되는 소재라도  그것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과 생각하는 것이

 인간적일 때 수필이 가치를 지닌다

.솔직하고 소박해서 진솔성이 있어야 한다.

 

예) 가을 !

감탄사를  쓴 것은  강한 표현이므로 조용하고 차분하게 시작하는 게 좋다

 

* 말할 때는 " 애인 " " 사랑한다 "는 말을 예사로 할 수 있으나 수필은 이런 말을 하지 않아도 독자가 알 수 있도록 함축한다.

 

예)"옥포만에 오자마자 짝사랑 애인을 갖게 되었다"

이런 표현은

개인 일기에나 쓰는 말들이다.

남에게 읽혀지는 문장에 거리낌없이 이런말을 드러내는 것은 수필문장의 품격이 어떤 것인가를 모르는 소치며

평소에 작가의 교양을 의심하게 하는 표현이다.

또한 이런 식의 표현은 소설적 수법이고 서양의 언어 풍속에서 온 잘못된 생각의 표현이다.

 

" 옥포만에  오자마자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났다 " 쯤으로 하면 된다 "

만나고 싶은 사람이라는 말속에 은근한 깊이가 스며있기 때문이다

*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함축있는 말을 쓸때 -   향기를 내는 글이 된다.

 

* 얄밉도록,야호.오메 따위의 표현은 수준이 떨어진다 - 침착하지 못한 문장으로 호들갑을 떨고있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서두를 의문형식의 강조법을 쓰는 것은 안정감을 잃게 할 수  있는 소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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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쓰기 3

 

 

감정표현도 너무 지리하게 연장함 안된다

적당히 독자로 하여금 생각하고 느낄 수 있을 만큼만 하면 된다.

 

 " 매표원 아저씨 " - 

여기서도 아저씨라는 말은 직접대화할 때나 쓰는 말이다.그냥" 매표원이라고 하면 된다.

 

 " 아빠. 타오셨다.정하셨다...... 그런말은 작자가 말한 대상은 남편을 가리킨 것이기에

표현상으로 보면 친정아버지를 말한 것처럼 보인다.

독자를 의식하면 그런 말은 삼가해야 한다.

 

교양인이라면

  당연히 글로 쓸 때는 "남편"이라 해야 한다

 

" 말씀하셨다 " 도 " 말했다".로 써야 한다.

 

글에서 작자의 사상이나 생동감 있는 감정이 들어가야 한다.

 

"세수하고 밥 먹고 학교에 갔다"는 식의 어린이들의 보고문은 안된다

 

문맥이 아무리 정확해도 아무런 감흥이나

공감대를 이루지 못하면 수필이 아닌 보고문 또는 기록문에 불과하다.

 

어떤 형태든 중심사상이 들어가야 한다.

 

수필도

실체적 대상에서 심상의 대상으로까지 확대시킬 때 - 수필의 주제는 분명해진다.

이것이 바로"주제의식" 이다.

 

 문장은 쉽게 꾸미지 말아야 한다.

 

 수필의 특성은 소박한데 있다.

또한 글 속에 감정이  숨겨져 있는데 있다.

감정이 겉으로 드러나는 글은 독자에게 감동을 주지 못한다.

 

독자가 글 속에서 감정을 찾아내게 하는 게 소박한 글이다 

 

* 예를 들어보자

"흐트러진 마음 가득 안개가 자욱하게 내려앉은 날" 솔직한 표현이 아니다.

무엇을 얘기 할려는 건지 뜻이 명확하지 않다

너무나 아름답게 꾸미려고한 까닭이다.

마음이 안개처럼 흐려졌다는 뜻인지

실제로 안개가 낀 것을 말한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는 얘기다.

 

고쳐본다면 -

 

" 안개가 자욱히 내려서 흐트러진 마음을

  더 무겁게 한다."

 

" 표정을 저당잡혔다"느니

" 저항의 몸짓을 상실한 빛깔 없는 생활인의 모습이니

이런 표현들은  지나치게 꾸며서 말 장난에 불과한 알맹이가 없는 표현이다.

이해하기 힘든 시를 써놓고 자기만 알 듯 좋은 문장이라고 착각하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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