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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영조(, 재위 1724~1776)의 둘째 아들로, 사후 왕으로 추존된 장조( 1735~1762, 사도세자)와 부인 헌경왕후() 홍씨를 합장한 무덤이다. 정조와 효의왕후 김씨의 무덤인 건릉()과 함께 1970526일 사적 제206호로 지정되었다. 1762(영조38) 521 뒤주 속에서 죽은 사도세자는 723일 배봉산() 아래 언덕에 예장되었으며묘호를 수은묘()라 하였다. 1776(정조 즉위) 3월 수은묘를 영우원()으로 개칭하고, 존호도 사도()에서 장헌()으로 개칭하였다.1789(정조 13) 영우원은 다시 현융원()으로 바뀌었고, 같은 해 107일 현 위치로 이장되었다. 189911월 장종()으로 추존되고 무덤도 융릉()이라는 능호를 받았으며, 그해 12월에는 장종에서 장조()로 묘호가 다시 바뀌었다. 1762년 이른 봄. 세자로 책봉된 영조의 둘째 아들 선(사도세자)은 뒤주 속에 갇혔다. 스스로 자결할 것을 명한 영조의 뜻을 거역하자 서인으로 폐하고 뒤주 속에 가둔 것이다. 살려달라고 몸부림치던 선은  8일 만에 죽었다. 아버지가 아들을, 그것도 왕권을 물려받을 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인 이 전대미문의 사건은 모략과 당파싸움으로 얼룩진 조선 구중궁궐의 암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융릉은 당파싸움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아비로부터 죽임을 당한 사도세자의 묘다. 본래 경기도 양주군 배웅산에 있던 것을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가 즉위하면서 그 해에 지금의 자리로 옮기고 현륭원이라 했다.정조는 생전에 하지 못한 효를 다하려는 마음으로 현릉원에 온갖 정성을 기울였다. 야트막한 구릉은 숲을 우거지게 하고 온종일 볕이 드는 자리에 부모를 모셨다. 릉 주변에는 사실감이 돋보이는 문인석과 무인석을 세웠고, 릉을 한 바퀴 두른 석축 또한 꽃문양이 화려한 조각으로 수놓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현릉원에서 오리 떨어진 곳에 절 하나를 지어 사도세자의 넋을 위로하게 했으니 그게 바로 오늘의 용주사다. 아버지에 대한 효성이 지극했던 정조는 죽어서 아버지 곁에 있기를 소망했고, 그의 유언대로 융릉 곁에 묻혔다. 그 두 개의 왕릉을 합쳐 융건릉, 혹은 화산릉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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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쓰기 2 

 

 

 

대화체는 반드시 삼가해야 한다.

 

작가의 언어로 나와야 하는 1인칭 문장이 되어야 한다.

 

* 등장인물의 입을 비는 것은 기량 부족이다.

 

* 문학성은

  1차적으로 독자를 감동시키는 데 있다.

 

* 문학성은 어떤 것이든지 궁극적으로  인간의 문제가 담기면서 감동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

 

* 수필가는 예리한 관찰력과 풍부한 상상력.해박한 지식.심오한 사상.뛰어난 예술감각.뚜렷한 개성이 있어야 한다.

 

* 자신의 결함 또는

  실패담을 솔직하고 꾸밈없이 다뤄야 한다

 

* 독자에게는 느끼고 생각할 여지를 남겨 놓는 글이 좋은 글이다.

즉,말을 다하면 독자는 지루함에 빠진다

 

* 수필의 생명은 함축이며

  함축을 위해서는 문장이 간결해야 한다

 (군소리는 글을 죽인다)

 

* 여러 사람에게 공감을 주어야 한다.

 

수필은 여운이 길어야 한다.

 

* 결론을 단정하면 글은 여운을 잃는다.

 

* 야비하거나 표독한 표현은 품위를 깍는다.

 

* 비판은 공정해야 하며

  자신의 분수를 염두하여야 한다.

 

* 비판을 하더라도 직접적인 것보다 간접적인 것이 수필에 어울린다

 

* 범속을 벗기 어려운 것이"여성" 을 대상으로 할 때가 되니 저속한 표현은 삼가해야 한다.

 ( 예: 아랫배가 어쩌구..지방질이 많고..)

 

* 예문)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소태씹은 맛이 되어 떨떠름한 표정을 짓게 된다.

이런 표현은 감정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 된다.

그러므로 수필문장은 감정처리가 격을 좌우하는 것이 관건이다.

 

*" 얼른 대답을 못한다 " 라든가 "언짢아진다" 라고 하면 말속에서 드러나지 않은 말

(감정)이 담겨져 감정을 걸러 낸 격이 된다.

 

* 수필은 감정을 걸러내야 품위가 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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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릉 [효종대왕]

조선 제17대 왕 효종( 1619~1659, 재위 1649∼1659)과 부인 인선왕후() 장씨(1618∼1674)의 무덤이다. 세종과 소헌왕후 심씨의 무덤인 영릉()과 함께 1970년 5월 26일 사적 제195호로 지정되었다.왕릉과 왕비릉을 좌우로 나란히 배치한 것이 아니라 아래위로 배치한 쌍릉 형식이다. 풍수지리에 의한 이런 쌍릉 형식은 조선왕릉 중 최초의 형태인데 경종과 선의왕후의 무덤인 의릉()도 이런 형태를 띠고 있다.처음엔 구리시 인창동 동구릉 ()의 태조 무덤인 건원릉() 서쪽에 있었으나 석물에 틈이 생겨 봉분 안으로 빗물이 샐 염려가 있다 하여 1673년(현종 14) 세종의 무덤인 영릉() 동쪽으로 능을 옮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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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쓰기 1

 

■ 수필문학의 이해

 

몽테뉴가 처음으로 쓰기 시작한 수상록을 바탕으로 수필문학이 시작되었다

 

R.M 알베레스:에세이는 그 자체가 원래 지성을 기반으로한 정서적 신비적 이미지로 되어진 문학이다 라고 말했다.

 

ESSAY와 수필을 구분을 한다면 -


 ESSAY 

 

논리적. 지적. 사회적. 객관적. 비평적. 중후한 면에 속한다

 

수 필 

 

개인적.주관적.감상적.정서적으로 가볍다

 

수필이란 무엇인가 ?

 

.수필은 개인적이면서 고백적 특색.

.고백적인 까닭에 작가가 자신이 주체가 되어 자신을 드러낸다.

.논설문처럼 설득하거나,요구하거나, 주장을 강조하지 않는다.

.작가의 견문.체험.감상등 작가의 인격에 의해 1인칭으로 쓰여지는 글이며,소설.희곡, 동화 처럼 허구로 쓰는 장르와 구분.

 

1차적 작자 자신에 바탕을 둔다.


* 잠깐 쉬어 갑시다 !

 

見指忘月(견지망월) 

손가락만 보고 달을 잊어버린다는 뜻 .

어린손주를 등에 업고 중천에 뜬 달을 보라고 한사코 손가락질을 하는데도 손주는 할머니의 손가락만 보았지

저 멀리 달은 못본다 .물론 손주는 그 손가락도 달이 있어서 보인다는 것 조차 모른다.

 

 중수필 -

 

제목부터가 무거운 느낌.말하고자 하는 뜻이 분명하다.

사회적이고 시사 비평적이며,논리성에 의해 설득력 강하다

 

 경수필 -

 

무엇을 어떻게 쓰든,자기의 생각과 느낌을 분명하게 문예적으로 쓴 산문적.짧은 단문이다.

 

소설속의 나는 수필속의 내가 아니며,허구로 설정된 나일 뿐.

 

소설처럼 지문과 대화로 엮는 것은 수필문장의 질을 모르는 결과이며 무지의 소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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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릉 [세종대왕] 

조선 제4대 왕 세종( 1397~1450, 재위 1418~1450)과 소헌왕후 심씨(1395∼1446)를 합장한 무덤이다. 녕릉(; 효종과 인선왕후의 무덤)과 함께 1970년 5월 26일 사적 제195호로 지정되었다.조선왕릉 중 최초로 하나의 봉분에 왕과 왕비를 합장한 능이자 조선 전기 왕릉 배치의 기본이 되는 능으로, 무덤 배치는 국조오례의를 따랐다. 1446년(세종 28) 세종의 비 소헌왕후가 죽자 당시 광주(, 현재의 서울시 서초구 내곡동 헌릉(태종과 원경왕후 민씨의 서쪽 산줄기에 쌍실을 갖춘 능이 조성되었다. 동쪽 방은 왕후의 무덤이고, 서쪽 방은 세종이 살아 있을 때 미리 마련하여 1450년 세종이 승하하자 합장하였다.세조 때 영릉의 터가 좋지 않다 하여 능을 옮기자는 주장이 나왔고, 1469년(예종 1) 현 위치로 옮겼다. 옛 영릉에 있던 상석.장명등 망주석 ·신도비들은 그 자리에 묻었으나 1973년 발굴하여 세종대왕기념관에 보존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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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스와 프쉬케

어느 나라 왕에게 아름다운 세 딸이 있었는데,그 막내가 프쉬케(Psyche)였다. 언니들의 외모도 좋았으나 막내가 아름답다는 소문이 널리 퍼지자 수 많은 나라의 왕자들이 몰려와 막내의 아름다움을 한 번 보고 가기를 소원했다. 공주가 받은 찬사는 사랑과 아름다움의 여신 아프로디테 아니고는 받아 본 적이 없는 찬사였다. 그녀의 아름다움에 질투를 느낀 여신 아프로디테는 아들인 사랑의 신 에로스에게 프시케를 이 세상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사람의 품에 안기게 하라고 시켰다. 그러나 에로스는 프시케의 미모에 빠져 부부가 되었다. 에로스는 프시케에게 완전한 어둠 속에서만 만날 수 있으며, 자신의 모습을 보려고 하면 영원히 헤어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동생을 시기한 두 언니는 프시케에게 남편이 괴물일지도 모르니 밤에 그의 얼굴을 확인해 보라고 부추겼다. 마음이 흔들린 프시케가 등불을 밝히고 살펴 보니잠자리에는 잘 생긴 청년 에로스가 잠들어 있었다. 등유의 뜨거운 방울이 어깨에 떨어지자 에로스는 잠에서 깨어나 푸쉬케를 꾸짖고 사라져 버렸다. 에로스를 잡으려다 창틀에서 떨어지는  프시케를 보며 에로스는 의심이 자리잡은 마음에는 사랑이 깃들이지 못한다라는 말과 함께 밤하늘로 날아가 버렸다.프시케는 남편을 찾아 각지의 신전을 돌아다니다가 데메테르의 신전에서 '아프로디테의 신전에 가서 겸손과 순종으로 용서를 빌라는 말을 듣고 데메테르가 가르쳐 준 대로 아프로디테의 신전에 가서 용서를 빌었다.
아프로디테는 여러 종류의 곡식이 섞인 곡식더미를 하룻밤 사이에 한 알씩 가려 내라거나, 황금으로 된 양털을 가지고 오라는 등의 시련을 주었다.아프로디테는 프시케가 갖가지 시험을 통과하자 하데스의 아내이자 지하세계의 여왕인 페르세포네의 처소로 가서 아름다움이 담긴 상자를 가져 오라고 시켰다.상자를 손에 넣은 프시케가 호기심에 상자를 열자 그 안에 들어 있던 죽음의 잠이  프시케를 뒤덮었다.  이때 에로스가 나타나 구출한 뒤
제우스에게 어머니를 설득하여 노여움을 풀어 달라고 간청하였다.제우스는 아프로디테에게 이들의 결합을 설득하였고 마침내 아프로디테도 둘의 결혼을 허락하였다. 프시케는 신들의 음료인 암브로시아를 마시고 불로불사의 생명을 얻었으며, 에로스와의 사이에서 희열을 상징하는 볼룹타스라는 딸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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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11대 왕 중종(  1488~1544, 재위 1506∼1544)의 무덤으로, 1970년 5월 26일 선릉(; 성종과 정현왕후 윤씨의 무덤)과 함께 사적 제199호로 지정되었다.  1545년(인종1)서삼릉(西경기도덕양구 원당동 산38-4) 능역에 있는 중종의 첫 번째 계비 장경왕후 윤씨의 능 오른쪽 언덕에 왕릉을 조성하고 능호를 정릉()이라 하였다.  그로부터  17년 후인  1562년(명종 17)  중종의 두 번째 계비 문정왕후 윤씨가  풍수지리가 좋지 않다  하여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조선왕릉중 왕만 단독으로 있는 무덤은 후대에 왕릉이 된 단종의 장릉을 제외하면 태조의 건원릉과 중종의 정릉뿐이다정릉은 지세가 낮아 여름철 홍수 때면 재실과 홍살문이 침수되는 피해를 자주 입었으며 임진왜란때에는 선릉과 함께 왜구에 의해 능이 파헤쳐지고 재궁이 불태워지는 수난을 겪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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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쩍인다고 다 금은 아니다

 

All that glitters is not gold 

번쩍인다고 다 금은 아니다

 

본래 로마의 속담이다.

세익스피어가 그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서 인용하기도 했다.

또 초오서, 세르반데스, 드라이든의 작품에서 인용하고 있다.

라 풍테에느의 우화시  " 사슴의 물거울 " 에 나오는 어귀다.

 

내용은 이렇다

옛날 사슴 한 마리가 맑은 샘물에 비친 자신의 뿔을 보고 너무나 아름다워 감탄한다.

그러나

가느다란 다리를 보고는 실망하고 말았다.

그러던중 사냥개가 기습해와 겁에 질려 도망하게 되었는 데 보잘 것 없다고 실망한 다리는

아무리 뛰어도 방해되지 않았는데 그 훌륭한 뿔은 나뭇가지에 걸려서 방해가 되는 것이다.

그후 사슴은 반성하며 뉘우치고 자신의 몸 모든 부분을 골고루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한다.

즉, 아름다운 것만을 추구하고, 이익이 되는 것만을 따르려는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아름답다는 것이 때로는 적이 되기도 하므로 외모에 현혹되지 마라

그러므로

겉만 번드레한 것을 따름으로 실익을 놓쳐선 안 된다는 교훈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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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9대 왕 성종( 1457~1494, 재위 1469∼1494)과 성종의 계비 정현왕후() 윤씨(1462~1530)의 무덤이다. 중종의 능인 정릉()과 함께 1970년 5월 26일 사적 제199호로 지정되었다. 왕릉과 왕비릉이 서로 다른 언덕에 있는 동원이강릉()으로, 왼쪽 언덕에 정현왕후의 능이, 오른쪽 언덕에 성종의 능이 배치되어 있다.왕릉의 봉분에는 12지신상이새겨진 병풍석을 둘렀고, 봉분 밖으로는 12칸의 난간석을 세웠다. 능에 병풍석을 세우지 말라는 세조의 유언에 따라 광릉(세조의 능) 이후 조성된 왕릉에는 병풍석을 세우지 않았으나 선릉에는 병풍석이 설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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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목에 방울을 단다

라풍테에느의 우화 쥐의회의에 나오는 말이다

고양이 "로딜라뒤스"는 쥐를 너무 많이 잡아 먹혀 죽자 쥐들은 회의를 한다.

쥐들은 서로 지혜를 짜내어 고양이가 오는 것을 미리 알아내는 방법을 궁리하였으나

그 묘안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 놓으면 고양이가 움직일 때마다 방울 소리가 날 것이니

자기들이 미리 피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쥐들은 좋은 생각이라 감탄하고 기뻐하였다

여러가지 의견이 나왔지만

그중에서 가장 늙은 쥐의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자고 견에 일치를 했다. 

그러나

과연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러 갈 것인가 아무도 없었다.

방울을 달겠다고 나서는 쥐는 없었다.

결국 아무도 나서지 못한 채 회의는 끝났다 .

성공의 가능성 없는 위험한 방법으로 선수를 치는 것을 비유한다.

더 자세하게 말해

쥐들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기로 결정하였지만,실제로 달 수 있는 쥐가 없었다는 내용의 설화다

좋은 방법인 줄은  알지만  실행하기  어려운 공론(空論)을 한다.

동물우화의 하나로 ‘묘두현령()’ 또는 ‘묘항현령()’이라고도 한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라는 속담의 근원설화이기도 하다.

문헌설화로『순오지()』에 묘항현령이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으며 널리 구전된다.

아무리 뛰어난 생각이라도

실제로 실행할 수 있는 방도가 없는 것이라면 헛된 공론에 지나지 않는다는 교훈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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