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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칭할 제초매트 50m와 고정핀,톱 그리고 파종할 이런저런 씨앗과 돼지감자 종자가 들어 있는 배낭.남부터미널에서 오후 4시 45분에 출발하는 장항행 버스를 타고 서천터미널에 내렸다.

터미널역 앞에 있는 음식점에서 뼈해장국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내일 점심 1인분을 포장하였다

내일 아침꺼리 햄버거와 콜라 한 잔 우유 하나와 소보르빵 한개를 간식거리로 샀다 .시골은 어두워지면 왠만한 곳은 문을 닫고 거리에는 사람도 없다. 그야말로 저녁 8시면 한밤중이다 ~

문닫기 전 농기구 가게에서 삽과낫을 구입하고 배낭과 비닐봉지에 담긴 물건을 들고 메고 헤맨끝에 하룻밤 묵을 수 있는 방을 잡았다.다음날 아침 6시에 일어나 간밤에 사왔던 햄버거와 콜라로 아침을 때우고 터미날역에 손님을 태우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택시를 타고 텃밭이 있는 온동리에 내렸다

우왕 ! 보고싶었단다 나무들아 ~
한 달 전에 심었던 스물 여섯 그루의 나무들. 귀여운 꽃도 피우고 아무 탈없이 잘 자라고 있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 자두나무도 심었는데 언제쯤 따먹을 수 있을지~

외롭게 동떨어져 있는...... 감나무인 듯 하다. 암튼 감나무 주변 억새풀을 대충 제거하고 제초매트를 깔아줬다

저번에 해주지 못했던 나무들의 접목부위 비닐을 하나하나 다 제거해주고 (진작에 알았다면 심을때부터 해줬을텐데...) 접목부위을 감싼 비닐을 제거해주지 않으면 썩을 수도 있고 성장을 못한다고 인터넷에 나왔습니다....ㅋㅋ

 옆에 있던 철쭉꽃가지를 꺾어 땅속에 깊숙히 쑤~욱 꽃아도 보고 (그야말로 삽목은 꺾꽂이처럼 하나 꺾어서 땅에 꽂아 발근시키는 것이라 합니다. 대부분 나무들은 접목과 삽목을 이용하여 품질을 개량하고 우수한 품질의 나무를 생산한다 합니다 ) 삽목한 것이 4월말쯤에 와 봐살아 있으면 햐 그건 정말 저에게는 깜짝 놀랄 사건일 것입니다. 이렇게 가지하나를 꺾어 꽃아도 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일인지 ...

마구마구 자란 찔레꽃 나무를 과감하게 잘라버리고 기존에 가지치기와 잘라내 널브러져 있던 잔재물들을 치우다보니 손목이고 발목이고 온몸이 다 아프고 그야말로 하늘이 노랗다 ~

간식타임 소브로 팥빵과 우유하나 ~

아무곳에나 심어도 잘 자란다는 돼지감자를 경사진 경계면에 심고 밭 한가운데에 떡하니 자리잡은 몇 개의 보기 싫은 나무를 잘라냈다

간밤에 포장해서 가져온 뼈해장국. 뼈해장국은 하룻밤사이 변했는지 약간 쉰 냄새에 먹진 못했지만 시장이 반찬이라고 고추와 김치만으로도 꿀맛이다

이쪽저쪽 왔다갔다 하면서 제초매트 50m를 까는데 혼자서 핀으로 고정시키려니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4월말에 와서는 이곳에 무엇이라도 심을 생각으로 풀 안나게 덮는 거다

한여름도 아닌데 땀은 비오 듯 하고 대짜리 2개 사간 생수는 다 마시고 농사 힘들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정말 무지무지 힘들다 !

아침에 타고 들어온 택시기사님께 서울 올라갈때도 태워주십사 약속한 시간이 다가와 계획했던 일을 다 끝내지 못하고 다음으로 미뤄야만했다. 서천터미널에서 서울남부터미널행 막차로 서울에 도착하니 저녁 8시가 넘었다.

고향친구 먼 지랄났다구 이곳까지 내려와 쓸데 없는 짓 한다구 난리고 이해가 안된다는 집사람의 지청구부터 그 멀리까지 농사에 농짜도 모르는 미친짓이라는 엄니까지 ... 내편은 아무도 없다 .

사실
오가는데 몇 십만원씩 지출되는 경비와 시간을 이해득실로 따진다면 결코 이해할 수 없다
또한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농사의 축에도 안끼겠지만 누가 시켜서는 못할 짓이다.
그저 내가 좋아서 한다는 거다.

훗날 멋진 귀농을 위해 지금 고생을 사서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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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11대 왕 중종 비 단경왕후 신씨(端敬王后愼氏)의 능이다
단경왕후는 1506년 반정으로 중종이 등위하자 왕비로 책봉되었으나 7일만에 폐출되었다.자식없이 세상을 떠나자 친정 무덤지역에 장례를 지냈으며 숙종 24년 (1698)에 사당을 세워 제사를 지냈다. 영조 15년(1739)에 무덤 이름을 온릉으로 봉하였으며, 무덤에 조각을 만드는데 있어서 장릉을 예로 삼되 죽은 후에 왕비의 무덤으로 봉해진 정릉이나 사릉을 따르게 하였다.  온릉은 병풍석과 난간석이 없는 원형무덤으로 무덤 주위에 양석과 호석 1쌍을 배치하였다. 동물 모양의 조각을 반으로 줄인 것은 비릉(妃陵)으로 봉해진 무덤의 예에 따른 것이다. 무덤 아래에는 제사지내는 방(재실)이 있었으나 1970년 도로확장 때 없어졌다

찾아가는법

전철 구파발역 2번출구 - 360번 버스를 타고 신흥유원지내리면 - 길 건너 온릉현판이 보인다. 

답사방법

온릉은 서오릉관리소에서 관할하므로 서오릉관리소(02.359-0090.386-8139)전화로 비공개지역출입신청서를 메일로 받아 간절한 소망 담아 작성하여 FAX(02.359-0068)로 보낸후 기다리면 출입허가서를 메일로 받을 수 있다 (학문연구 목적이 아님 출입허용이 안되므로 구구절절하게 잘써 ) 출입허가서를 받으면 답사갈때 반드시 지참해야 하고 답사당일 온릉관리소(031.855-5228)에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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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12대 왕 인종( 1515~1545, 재위 1544~1545)과 인종의 비 인성왕후() 박씨(1514~1577)의 무덤이다. 3개의 왕릉(희릉·효릉·예릉)과 후궁·대군·공주의 무덤들로 이루어진 서삼릉(西, 사적 제200) 경내에 있다. 왕릉과 왕비릉이 한 곳에 나란히 놓인 쌍릉으로, 효성이 지극했던 인종을 기려 능호도 효릉()으로 정해졌다.인종은 재위 8개월 만인 15457월 경복궁 청연루에서 숨을 거뒀다. 같은 해 1015 부모 옆에 묻어달라는 인종의 유언에 따라 부왕인 중종과 어머니 장경왕후의 능인 정릉() 옆에 능을 조성하였다. 하지만 1562(명종 17) 정릉이 현재의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의선릉() 옆으로 옮겨갔고, 장경왕후의 능은 희릉()이라는 능호로 바뀌어 효릉 옆에 있다.인종이 자신의 장사를 검소하게 치르도록 명한 데다 당시 인종의 외가인 대윤()과 명종의 외가인 소윤() 사이의 권력투쟁으로 인해 명종과 문정왕후 측에서 상례절차를 줄이고 능역 조성을 소홀히 한 것으로 여겨진다. 1577(선조10)1129  인성왕후  박씨가 세상을 떠나  왕비릉을 조성했을 때  왕릉에 병풍석을 설치하고 다른 석물들도 개수하였다.

비공개지역이므로 미리부터 예약해야 한다 지금은 어떨런지 모르지만 하여간 1주일전 서삼릉출장소에 전화로 예약하고 새벽밥을 먹고 길을 나섰다. 아름다운 길 서삼릉입구에 도착하니 비공개지역 효릉을 답사하고자 하는 몇 몇의 학생들과 관람객들이 있었다.서삼릉 안에는 참으로 볼 것이 많다.효릉뿐만 아니고 태실,소경원,왕자.공주묘,후궁묘까지 일반인들이 잘모르는 비공개지역이 많았다.해설사의 자세한 안내로 2시간 넘게 조선왕릉의 아름다운 오솔길을 걸으며 선조님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던 유익한 시간이었다.

찾아가는법

전철 삼송역 5번출구로 나와 버스정류장에서 041번 마을버스를 타고 - 약 10여분을 달려 삼송동 허브나라에서 내려 -  길건너 서삼릉 안내판 방향으로 약 15분 쉬엄쉬엄 걸어가면 원당목장 경마교육원옆에 서삼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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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알아보기 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얘기를 해보자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

의 왕 라이오스새로 태어나는  왕자가 장성하면  자신의  생명을  위협할 것이라는 신탁을 받는다.

 

이에 라이오스 왕은 어느 양치기에게 자신의 아들을 죽이라고 명한다.

 

그러나 양치기는 가여운 마음에 아기를 죽이지 못하고 다리를 묶어 나무에 매달아 놓는다.

 

이를 발견한 농부가 아기를 데려간다. 

부부는 아기를 양자로 들이고 오이디푸스 (부은 발이라는 뜻)라는 이름을 지어 준다.

후에 라이오스 왕과 마주친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친아버지라는 것을 모르고 죽이게 된다.

또한 괴물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푼 오이디푸스는 왕으로 추대되고 왕비 이오카스테와 결혼하게 된다.

결국 오이디푸스는 자기도 모르게 친아버지를 살해한 자식, 친어머니의 남편이 된 것이다.

시간이 흘러 진실을 알게 된 이오카스테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눈을

찔러 실명시킨 뒤 방랑길에 오른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이렇게 그리스신화   오이디푸스 이야기에서 유래되었다.

남자아이의 어머니에 대한 성적 애착이라는 것은 아버지가 갖는 욕망을 모방하는 것인데

정신 발달의 중요한 전환점이다

아들이 동성인 아버지에게는 적대적이지만 이성인 어머니에게는 호의적이며 무의식적으로 성()적 애착을 가지는 복합감정이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남자아이가 아버지에 대해 반감이나 증오를 품으며 어머니에 대해서는 애착을 품는

무의식적인 심리를 가리키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다 .

정신분석학에서는 리비도에 의한 인간의 본능적인 성욕을 중시하는데 그런 성욕이 유아기때 이미 발생한다는 유아 성욕설을 주장한다

특히 그런 유아 성욕의 대상이 남자아이에게 있어서는 어머니이며 여자아이에게는 아버지라는 파격적인 주장을 펴면서

아들이 어머니에게 느끼는 감정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 부른다

이와는 대립적으로 여아인 딸이 아버지에 대해 성적 애착을 가지며 어머니에 대하여는

증오심을 가지는 성향을 엘렉트라 콤플렉스라 부른다

프로이트는

유아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극복하고서야 비로소 성인의 정상적인 성애가 발전하는 것이지만  이를 이상적으로극복하는 것은

힘든일이며 일반적으로 신경증환자는 이 극복에 실패한 사람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이 콤플렉스는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모든 지역과 모든 시대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생물학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프로이트는

남자아이가  아버지를 제거하고  어머니를 독차지하려는 경향이 남근기 4~6세에 분명하게

드러나며 잠복기 6~12세가 되면 다시 억압된다고 주장했다

아이는 어머니의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아버지와 같은 위치에 서고 싶어한다.

그러나 자신보다 몸집도 크고 절대적 존재인 아버지에게 열등감과 좌절감을 느낄뿐이다.

위협을 느낀 아이는 엄마에 대한 독점욕을 양보하고 아버지 존재를 수용함으로 타협한다

타협으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극복되고

부모로부터 인정받는 사회 구성원의 하나로 거듭나게 된다.

출처 :네이버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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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27대 왕 순종( 1874~1926)과 비 순명황후 민씨, 계비 순정황후 윤씨 세 사람을 합장한 무덤이다. 고종과 명성황후의 무덤인 홍릉()과 함께 1970526일 사적 제207호로 지정되었다.순명효황후는 순종이 즉위하기 전인 1904(광무 8) 115일 숨졌고, 이듬해 14일 양주 용마산 아래 언덕에 예장되었다. 1926425일 순종이 세상을 떠나 그해 611일 홍릉 왼쪽 산줄기 현 위치에 안장되면서 순명효황후를 이장하여 합장하였고, 1966년에는 순정효황후가 합장되었다.조선시대의 마지막 왕릉인 유릉()은 조선왕릉 중에서 하나의 봉분에 세 명을 합장한 유일한 동봉삼실릉()이다. 홍릉처럼 황체릉 양식으로 조성되어 있지만 홍릉에 비해 능역 규모가 약간 작은 편이다. 봉분을 감싼 병풍석과 난간석에는 꽃무늬가 새겨졌으며 혼유석 망주석·사각.장명등의 석물이 배치되어 있다. 대부분의 조선 왕릉에 설치된 석양()과 석호() 없다.능이 조성된 언덕 아래에는 정자각 대신 침전(殿)이 있고, 침전 앞 참도() 양쪽에 문인석·무인석과 기린·코끼리·사자·해태·낙타·말 등 동물 석상이 차례로 배치되었다. 침전 외에 비각.홍살문 수복방.재실 등의 부속건축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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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랑새는 안데르센이 작품이 아니라 벨기에 마테를링크의 작품이다
 

모리스 마테를링크는 1906년 6막 12장 분량의 희곡 [파랑새]를 썼다. 2년 후인 1908년 러시아 연극계의 거장 콘스탄틴 스타니슬랍스키가 모스크바 예술극장에 이 작품을 올렸고, 대성공을 거뒀다. 연극이 성공하자 마테를링크는 이듬해 1909년 프랑스에서 희곡집 [파랑새]를 펴냈다.

1911년 마테를링크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파랑새는 어느새 행복의 상징이 됐다

찌루찌루와  미찌루로 알려진  [파랑새]의 주인공의 원래 이름은 ‘틸틸’과 ‘미틸’다.

일본어판을 번역해 국내에 들어오면서 잘못 알려졌다.

크리스마스 이브 밤 소박한 시골 오두막집에 사는 남매 틸틸미틸에게 빨간 두건을 입고 구부정한 자세로 지팡이를 쥔 자그마한 할머니가 찾아온다. 요술쟁이 할머니 베릴륀느다.

그녀는 온몸이 파란 파랑새를 찾고 있다. 아픈 어린 딸이 원한단다. 딸은 파랑새가 있으면 행복해 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할머니는 틸틸에게 마법의 모자를 씌워준다. 다이아몬드가 달린 초록색 모자다.

다이아몬드를 돌리면 요정을 볼 수 있다.

틸틸이 다아아몬드를 돌리자 개·고양이·물·우유·사탕·빵·빛으로부터 요정들이 나온다.

틸틸과 미틸은

이들 요정들과 함께 파랑새를 찾아 떠난다.
마테를링크는 신비와 운명, 저승과 같은 환상의 세계를 작품 속에 자주 담았다.

그는 진실은 눈에 보이는 것 저 너머에 있다고 믿었다. 틸틸과 미틸은 신비의 나라와 만난다.

추억의 나라에서는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동생들과 식사를 한다.

밤의 궁전에서는

전쟁, 질병, 유령, 어둠과 공포를 만난다.

숲속에서는

떡갈나무, 포플러, 보리수, 너도밤나무의 영혼과 당나귀, 수탉, 늑대들에게 공격을 당한다.

공동묘지를 거쳐 도달한 행복의 정원에서는

다양한 행복을 만난다.

끝으로 하늘궁전인 미래의 나라에서는

세상에 태어날 준비하는 아기들을 만난다.

파랑새는 잘 잡히지 않는다.

추억의 나라에서 잡아온 파랑새는 파란색은 온데간데없이 검은색으로 변했다

밤의 궁전에서 잡아온 수십 마리의 파랑새는 모두 죽어버렸다.

행복이 그렇다.

잡힐 듯 한데 생각보다 잘 잡히지 않는다.

잠에서 깬 틸틸와 미틸은 마침내 파랑새를 찾는다. 결국 그렇게 찾고 찾았던 파랑새는 집안 새장에 있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행복을 집 밖에서 찾으려고 동분서주한다

파랑새만 찾으면 행복해질 수 있단 믿음으로

찌루찌루와 미찌루 형제는

파랑새를 찾아 길을 떠났지만 끝내 찾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자기들이 찾던 파랑새는

집 새장 안에 있었다는 이야기 조금은 허무한 것 같지만 -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가까운 곳에 있으며 마음속에 있다는 아름다운 이야기다

행복은 내안에 있습니다.

오늘도 행복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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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26대 왕 고종( 1852~1919)과 비 명성왕후 민씨(1851~1895)를 합장한 무덤이다. 순종과 순명황후,순정효황후의 무덤인 유릉()과 함께 1970년 5월 26일 사적 제207호로 지정되었다.1895년 8월 20일 경복궁 곤녕전에서 시해된 명성황후는 1897년 11월 21일 서울 청량리에 묻혔다. 고종은 1919년 1월 21일 덕수궁 함녕전에서 숨져 3월 4일 현 위치에 예장되었고, 그때 명성황후의 능이 풍수지리상 불길하다는 이유로 이장되어 고종의 능에 합장되었다.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기 때문에 홍릉은 황제릉의 양식을 따라 명나라 태조의 효릉()을 본떠 조성되었다. 꽃무늬를 새긴 12면의 병풍석으로 봉분을 둘렀으며, 봉분 밖으로 역시 꽃무늬를 새긴 12칸의 난간석을 설치하였다. 혼유선,망주석,사각 장명등의 석물을 배치하였고, 봉분 밖으로 3면의 나지막한 담을 둘렀다. 대부분의 조선 왕릉에 설치한 석양()과 석호()는 없다.능이 조성된 언덕 아래쪽에는 정자각 대신 정면 5칸·측면 4칸의 일자형 침전(殿)을 세웠다. 침전 앞의 참도() 양 옆으로 문인석·무인석과 기린·코끼리·사자·해태·낙타·말의 동물 석상을 차례로 배치하였으며, 장대한 크기의 문·무인석은 금관을 쓴 전통적 기법으로 조각되었다. 침전 외 부속건축물로 비각, 홍살문 수복방·재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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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답 

 

영어로 BLUE Stocking 파란 양말이다.

영어사전에서의 뜻은 (전통적으로 여자가 하는 일들보다) 사상과 학문에 더 관심이

많은 여자.문학을 좋아하는 여성문학가를 자처하는 여성들을 이르는 말이다 .

영국에서 일어났던 부인 참정권 운동의 한 파이기도 하며 새로운 사상

부르짓는 여류 문학가의 유파를 가리키는 명칭이다.

 

1750년경 런던에서 재색을 겸비하고

문학 애호가인 인텔리 여성들의 모임

(프랑스의 문학적 살롱과 같은것)

사교계의 재원인 몬터규 부인, 비제 부인, 오드 부인 등이 연 문학살롱의 별명에서 유래되었는데 여류학자ㆍ청탑파.

문학을 공부하는 여인을 가리킨다.

저속한 것을 배격하면서 보다 차원 높고 유익한 것을 추구하기 위해 자주 문학집회를 가졌다.

 

그곳에 참석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거추장스런 걸 피하고 간소한 평상복 차림으로

이른바 상류사회 그들만의 리그라는 상식을 타파했다.

거기에는 남성의 문학자들이 초대되었는데,그곳에 참석한 한 남성 벤자민 스티링

플리트는 검은색 비단양말을 신는 것이 상식이었지만 파란양말만을 고집했다

그 파란 양말을 목격한 해군 군인은 그 문학회를 가리켜서 Blue stocking Society

청답회라 불렀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일반적으로 블루스토킹 하면 여류 문인.여류 문학 애호가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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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23대 순조대왕(재위 1800∼1834)과 순원왕후 김씨(1789∼1857)의 무덤이다. 순조는 11세에 왕위에 올랐으나 나이가 어려서 왕대비인 정순왕후 김씨에게 정치를 돌보게 됨으로써 외척에 의한 정치가 극에 달하였고, 사회가 혼란했다. 인릉은 무덤에 병풍석을 세우지 않았고, 12칸의 난간석을 둘렀으며 양석과 마석·상석·망주석을 세웠다. 문인석·무인석의 조각은 사실주의적으로 섬세하고 아름답다. 언덕 아래에는 2개의 비석을 세웠다. 순조는 18341113일 경희궁 회상전에서 숨을 거뒀다. 1835(헌종 1) 419일 경기도 파주에 있는 인조 무덤장릉() 왼쪽 산줄기에 예장하였다가 풍수가 좋지 않다 하여 1856(철종 7) 1011일 현 위치로 옮겼다. 순원왕후는 185784일 창덕궁 양심각에서 숨져 그해 1217일 인조와 합장되었다 원래 제사를 지내는 건물인 재실은 무덤과 같은 지역에 있는데 헌릉·인릉의 재실은 서로 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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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위한 국문법 7

 

의존명사는 띄어 쓴다.

) 먹을 만큼 먹어라 , 아는 이를 만났다

네가 말한 바를 알겠다. 그가 떠난 지가 오래


두말을 이어주거나 열거할 때 쓰는 말들은 띄어 쓴다.


) 국장 겸 과장,열 내지 스물,청군 대 백군, 부산,광주 등......


 단위를 나타내는 명사는 띄어 쓴다.


) 한 개, 차 한 대, 금 서 돈, 집 한 채, 신 두 켤레, 북어 한 쾌.


, 순서를 나타내는 경우나 숫자와 어울려 쓰이는 경우에는 붙여 쓸 수 있다.


) 두시 삼십분 오초, 제일과, 삼학년, 육층, 2019년 10월 9일


수를 쓸 때는 만 단위로 띄어 쓴다


) 십이억 삼천오백오십육만 칠천팔백구십팔 12억 3455만 7809

 

 단음절로 된 단어가 연이어 나타날 경우에는 붙여 쓸 수 있다. 


) 좀더 큰것, 좀 더 큰 것, 이말 저말, 이 말 저 말, 한잎 두잎, 한 잎 두 잎.


 보조용언은 띄어 씀을 원칙을 하되 경우에 따라 붙여 씀도 허용함.


) 불이 꺼져 간다. 불이 꺼져간다. 그릇을 깨뜨려 버렸다. 그릇을 깨뜨려버렸다.

 

 부사의 끝 음절이 " 이 "로만 나는 것은 - " 이 " 로 적고,  " 로만 나거나 

" "  " "로 나는 것은 -  " " 로 적는다.


 " " 로만 나는 것.


가붓이,깨끗이,나붓이,느긋이,둥긋이,따뜻이,반듯이,버젓이,산뜻이,의젓이,가까이,고이,날카로이,대수로이,번거로이,많이,적이,헛되이,집집이,틈틈이 ,겹겹이,


 " "로만 나는 것.


극히, 급히, 딱히, 속히, 작히, 족히, 특히, 엄격히, 정확히.


 " " " " 로 나는 것.


솔직히, 가만히, 가편히, 나른히. 무단히,각별히, 소홀히, 쓸쓸히, 정결히, 과감히, 꼼꼼히

심히, 열심히, 급급히, 답답히, 섭섭히, 조용히, 공평히. 능히, 당당히, 분명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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