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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 8대 왕 예종( 1450~1469, 재위 1468∼1469)과 계비 안순왕후() 한씨(1445~1498)의 무덤이다. 5개의 조선왕릉(경릉·창릉·명릉·익릉·홍릉)으로 이루어진 서오릉(西, 사적 제198호) 경내에 있다. 서오릉에 가장 먼저 들어선 것은 덕종의 무덤(경릉)이지만 덕종이 왕으로 추존되기 이전의 무덤이어서 조성 당시에는 왕릉이 아니었다. 서오릉에 조성된 최초의 왕릉은 창릉으로, 왕과 왕비의 능을 서로 다른 언덕 위에 따로 만든 동원이강릉() 형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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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19대 왕 숙종( 재위 1674~1720)의 원비인 인경왕후()김씨(1661~1680) 무덤이다. 5개의 조선왕릉(경릉·창릉·명릉·익릉·홍릉)으로 이루어진 서오릉(西, 사적 제198호)에 속해 있다.인경왕후는 1680년(숙종6)10월 26일 경희궁 회상전에서 숨을 거두고,1681년 2월 22일 안장되었다.숙종이 왕릉의 능제를 단순화하고 석물을 간소하게 제작하라고 명하기 전에 조성된 능으로, 기본적으로는 국조오례의 제도를 따르고 부분적으로는 임진왜란 이후의 양식을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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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19대 왕 숙종(1661~1720 재위1674~1720)과 첫 번째 계비 인현왕후() 민씨(1667~1701), 두 번째 계비 인원왕후() 김씨(1687~1757) 세 사람의 무덤이다숙종과 인현왕후의 능이 쌍릉으로 나란히 놓여 있고, 인원왕후의 능은 다른 쪽 언덕에 단릉()으로 모셔져 있는 동원이강릉() 형식이다. 동원이강릉의 오른쪽 언덕을 왕이 차지하는 일반적인 왕릉과는 달리 낮은 서열의 인원왕후가 가장 높은 자리인 오른쪽 언덕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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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25대 왕 철종( 1831~1863, 재위 1849~1863)과 철인왕후() 김씨(1837~1878)의 무덤이다

3개의 조선왕릉(희릉·효릉·예릉)과 후궁·대군·공주의 무덤으로 이루어진 서삼릉(西, 사적 제200호) 경내에 있다. 고종은 왕실의 세도정치를 타파하고 왕권을 강화하려는 의도로 예릉의 석물과 부속건축물을 웅장하게 조성하였다. 왕릉과 왕비릉이 나란히 놓인 쌍릉으로 국조오례의 국조속오례의 국조상례보편에 의거한 능제를 적용한 마지막 능이다. 두 개의 봉분을 에워싸고 난간석을 설치하였으며, 난간석 기둥에는 방위를 나타내는 12간지 문자를 새겨 넣었다. 각 봉분 앞에 혼유석이 1좌씩 설치되었으며 망주석·석양()·석호()문인석.무인석·석마()장명등 등의 석물이 배치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조선의 왕릉은 상·중·하계의 3단으로 구성되고, 장명등은 중계의 중앙에 세우지만 특이하게도 예릉의 장명등은 하계 가장 끝에 서 있는데 이는 조선 왕릉에 있어 유일한 배치법이다. 장명등의 지붕 위에는 둥근 파문이 여러 겹으로 겹쳐 있고, 가운데의 원형 틀 안에 꽃문양을 새겨 넣어 전체적으로 이국적인 느낌이 든다.능이 조성된 언덕 아래에 있는 정자각은 다른 능의 정자각에 비해 웅장하고 홍살문에서  정자각에 이르는 길인 참도() 또한 기존의 2단이 아니라 3단으로 조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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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 산38-4번지 서삼릉 안에 있는 조선 제11대 왕 중종(  재위 1506∼1544)의 첫 번째 계비인 장경왕후() 윤씨(1491~1515)의 무덤이다. 3개의 왕릉(희릉·효릉·예릉)과 후궁·대군·공주의 무덤이 있다.희릉은 처음에 서울특별시 서초구 내곡동에 있는 태종과 원경왕후 민씨의 쌍릉인 헌릉() 서쪽 언덕에 조성되었다. 중종의 부마가 된 김안로( 1481~1537)가 희릉 밑에 큰 돌이 깔려 있어 불길하다 주장하여 1537년(중종 32)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김안로는 당시 세자였던 인종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자신의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일을 벌여 당시 능을 조성하는 데 관련된 자들을 처벌하였다.현 위치로 옮긴 후 중종의 능이 동원이강릉(; 왕릉과 왕비릉이 서로 다른 언덕에 조성된 능)의 형식으로 희릉 옆에 조성되어 능호가 정릉()으로 바뀌었으나 1562년(명종 17) 문정왕후에 의해 정릉이 현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선릉() 옆으로 옮겨가면서 장경왕후 능은 다시 희릉으로 불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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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릉은 조선 6대 단종의 부인인 정순왕후(1440∼1521)의 무덤이다.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준 뒤 그에 의해 죽임을 당하자 왕후는 왕실을 떠나 작은 집을 지어 평생 흰옷만 입으며 고기와 생선은 먹지 않았다고 한다. 왕후가 후사(後嗣) 없이 승하(昇遐)함에 부왕(夫王) 단종(端宗)의 누이 경혜공주(敬惠公主)의 시가(媤家)인 정씨가(鄭氏家)의 묘역에 장례하였으며, 봉사(奉祀)도 정씨가에서 하여왔다. 숙종 24년(1698)에 단종이 왕으로 복위 되면서 정순왕후라 봉해졌고 왕후의 무덤을 사릉이라 했다. 무덤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을 하지 않았고, 무덤 앞에 상석과 양석, 둘레돌이 있으며 그 밖으로 3면을 낮은 담으로 쌓았다. 단종의 무덤이 장릉으로 봉해졌을 때에도 병풍석과 난간석을 세우지 않고, 동물모양의 돌만 세웠는데 이는 왕릉으로 봉해진 것에 대한 예에 따른 것이다. 사각지붕 모양의 명등석은 장릉과 같은 것으로 숙종대의 양식이 잘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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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제20대 왕 경종(1721∼1724)의 원비 단의왕후()심씨(1686~1718)의 무덤이다.9개의 조선왕릉(건원릉.현릉·목릉·휘릉·숭릉·혜릉·원릉·수릉·경릉)으로 이루어진 동구릉(, 사적 제193호) 중 하나로, 동구릉 서쪽 능선의 숭릉(; 현종의 능)과 경릉(; 헌종의 능) 사이에 있다.단의왕후는 1718년(숙종 44) 2월 7일 창덕궁 장춘헌에서 세자빈의 신분으로 세상을 떠났고,1720년(경종 1) 왕비로 추존되었다. 혜릉은 능역이 전반적으로 좁고, 석물의 크기 또한 다른 왕릉의 것보다 작은데 단의왕후가 죽을 때 세자빈의 신분이었기 때문에 능도 단출하게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봉분을 에워싸고 12칸의 난간석이 둘러져 있으며, 병풍석은 설치되지 않았다. 봉분 주위에 혼유석과 세호()가 새겨진 망주석 1쌍, 석양()·석호() 각 2쌍이 배치되어 있다. 봉분 아랫단에는 높이 173cm의 문인석과 석마() 각 1쌍이 있으며 장명등은 남아 있지 않다. 그 아랫단에는 높이 183cm의 무인석과 석마 각 1쌍이 배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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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16대 왕 인조(1623∼1649)의  계비 장렬왕후() 조씨(1624~1688)의 무덤으로, 9개의 조선왕릉(건원릉·현릉·목릉·휘릉·숭릉·혜릉·원릉·수릉·경릉)으로 이루어진 동구릉(, 사적 제193호) 중 하나이다. 장렬왕후는 1688년(숙종 14) 8월 26일 창경궁 내 원반에서 6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그해 12월 16일 능에 안장되었다.봉분을 둘러싸고 12지신상을 새겨 방위를 표시한 12칸의 난간석을 설치하였고, 봉분 뒤로는 3면의 곡장(; 나지막한 담)을 쌓았다. 봉분 앞 혼유석()을 받치고 있는 고석()은 5개로, 도깨비가 새겨져 있다. 조선태조에서 세종에 이르는 왕릉의 고석은 모두 5개였다가 이후 왕릉부터 4개로 줄었는데 휘릉 때부터 다시 초기의 형식을 따라 5개가 되었다.봉분 주위의 석양()과 석호()는 각각 2쌍으로, 아담한 크기에 다리가 짧다.   특히 석양은 다리가 너무 짧아 배가 바닥에 거의 닿을 정도이다. 봉분 아랫단의 문인석과 무인석은 높이 2.4m에 이르는 웅장한 석물들로, 문인석은 이목구비가 마멸되어 윤곽만 남아 있고, 무인석은 목이 없이 얼굴과 가슴이 붙어 있는데 우직하고 우람한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다.그밖에 장명등 망주석 석마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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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21대 왕 영조( 1694~1776, 재위 1724~1776)와 그의 계비 정순왕후 김씨(1745~1805)의 무덤이다. 9개의 조선왕릉(건원릉.현릉·목릉·휘릉·숭릉·혜릉·원릉·수릉·경릉)으로 이루어진 동구릉(, 사적 제193호) 중 하나로, 태조의 무덤인 건원릉 서쪽 두 번째 산줄기에 있다.
영조는 원비인 정성왕후가 잠든 서오릉의 홍릉() 자리에 묻히기를 바랐으나 정조가 현 위치에 능지를 정하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원릉이 있는 자리는 원래 효종의 능인 영릉()이 있었던 곳으로, 영릉은 1673년(현종 14) 경기도 여주로 옮겨졌다. 영조는 1776년 3월 숨을 거두고,같은해 7월 27일 능에 안장되었으며 정순왕후는 원릉을 조성한 지 29년 후 1805년(순조5) 6월 20일 영조 옆에 안장되었다.
왕릉과 왕비릉이 나란히 놓인 쌍릉으로, 난간석이 두 왕릉을 에워싸고 있다. 봉분을 감싸는 병풍석은 설치되지 않았으며, 각 봉분 앞에 혼유석이 1좌씩 놓여 있고, 혼유석 좌우로 받침에 꽃문양을 새긴 망주석 1쌍이 있다. 그밖에 석양()·석호() 각 2쌍 문인석·석마() 각 1쌍, 장명등 1좌, 무인석·석마 각 1쌍 등의 석물이 배치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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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18대 왕 현종( 1641~1674, 재위 1659∼1674)과 그의 비 명성왕후() 김씨(1642~1683)의 무덤이다.
현종은 1674년(숙종 즉위년) 8월 18일 34세의 나이로 창덕궁 대조전 양심각에서 숨을 거뒀다. 팔도의 승군 2,650명을 징발하여 능을 조성하였고, 12월 13일 조선 태조의 무덤인 건원릉() 남서쪽 산줄기에 예장하였다. 명성왕후는 1683년(숙종 9) 12월 5일 창경궁 저승전 서별당에서 세상을 떠나 현종 옆에 묻혔다.하나의 곡장(; 나지막한 담) 안에 왕릉과 왕비릉을 나란히 조성한 쌍릉으로, 난간석이 두 능을 감싸고 있다.병풍석은 없으며, 석양()·석호() 각 2쌍 망주석 1쌍 장명등 1개 문인석 석마() 각 1쌍, 무인석·석마 각 1쌍의 석물을 갖추었다.장명등과 망주석에는 인조 무덤인 장릉()의 석물에서처럼 꽃무늬가 새겨져 있으며,망주석 위쪽에 세호라고 불리는 작은 동물조각이 뚜렷하게 조각되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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