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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릉 [효종대왕]

조선 제17대 왕 효종( 1619~1659, 재위 1649∼1659)과 부인 인선왕후() 장씨(1618∼1674)의 무덤이다. 세종과 소헌왕후 심씨의 무덤인 영릉()과 함께 1970년 5월 26일 사적 제195호로 지정되었다.왕릉과 왕비릉을 좌우로 나란히 배치한 것이 아니라 아래위로 배치한 쌍릉 형식이다. 풍수지리에 의한 이런 쌍릉 형식은 조선왕릉 중 최초의 형태인데 경종과 선의왕후의 무덤인 의릉()도 이런 형태를 띠고 있다.처음엔 구리시 인창동 동구릉 ()의 태조 무덤인 건원릉() 서쪽에 있었으나 석물에 틈이 생겨 봉분 안으로 빗물이 샐 염려가 있다 하여 1673년(현종 14) 세종의 무덤인 영릉() 동쪽으로 능을 옮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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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제20대 왕 경종(1721∼1724)의 원비 단의왕후()심씨(1686~1718)의 무덤이다.9개의 조선왕릉(건원릉.현릉·목릉·휘릉·숭릉·혜릉·원릉·수릉·경릉)으로 이루어진 동구릉(, 사적 제193호) 중 하나로, 동구릉 서쪽 능선의 숭릉(; 현종의 능)과 경릉(; 헌종의 능) 사이에 있다.단의왕후는 1718년(숙종 44) 2월 7일 창덕궁 장춘헌에서 세자빈의 신분으로 세상을 떠났고,1720년(경종 1) 왕비로 추존되었다. 혜릉은 능역이 전반적으로 좁고, 석물의 크기 또한 다른 왕릉의 것보다 작은데 단의왕후가 죽을 때 세자빈의 신분이었기 때문에 능도 단출하게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봉분을 에워싸고 12칸의 난간석이 둘러져 있으며, 병풍석은 설치되지 않았다. 봉분 주위에 혼유석과 세호()가 새겨진 망주석 1쌍, 석양()·석호() 각 2쌍이 배치되어 있다. 봉분 아랫단에는 높이 173cm의 문인석과 석마() 각 1쌍이 있으며 장명등은 남아 있지 않다. 그 아랫단에는 높이 183cm의 무인석과 석마 각 1쌍이 배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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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순조 (,재위 1800~1834)의 원자로 왕세자(효명세자)로 책봉되고,사후에 왕으로 추존된 익종(1809~1830)과 부인 신정왕후() 조씨(1808~1890)를 합장한 무덤이다.효명세자는1830년(순조30) 5월6일 창덕궁 희정당에서 숨을 거두었고,같은 해 8월 4일 서울 석관동에 있는 경종 무덤인 의릉() 좌측에 무덤을 만들어 연경묘()라 하였다. 1835년(헌종 즉위) 5월 19일 효명세자가 왕(익종)으로 추존되면서 연경묘는 수릉()이라는 능호를 받았다.그 후 풍수상의 문제로 2번에 걸쳐 능을 옮겨 1855년(철종 6) 현재의 위치인 동구릉(, 사적193호)의 태조 무덤 건원릉 좌측에 자리 잡았다. 신정왕후는 1890년(고종 27) 4월 17일 경복궁 흥복전에서 숨져 같은 해 8월 30일 익종과 합장되었다.
조선 왕릉은 일반적로 3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수릉은 2단으로 되어 있다. 봉분이 있는 윗단에는 봉분을 둘러싼 12칸의 난간석과 혼유석 1좌, 석양()·석호() 각 2쌍 망주석 1쌍이 있으며 3면의 나지막한 담으로 둘러싸여 있다. 아랫단에는 무인석·석마() 각 1쌍, 문인석·석마 각 1쌍이 배치되어 있다. 문인석은 길쭉한 얼굴에 눈과 입술이 가늘게 표현되고, 어깨를 움츠리고 목을 앞으로 빼고 있는 형태로 조선 후기 인물 조각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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