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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릉

조선 제5대 왕 문종( 1414~1452 재위 1450∼1452) 문종의 부인이자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 1418~1441)의 무덤이다. 9개의 조선왕릉(건원릉.현릉·목릉·휘릉·숭릉·혜릉·원릉·수릉·경릉)으로 이루어진 동구릉(, 사적 제193호) 경내에 있다.<국조오례>의 본이 된 영릉(, 세종과 소헌왕후의 능)의 형식을 따른 능으로, 왕과 왕비의 능을 서로 다른 언덕 위에 따로 만든 동원이강릉()이다.정자각에서 능을 바라보았을 때 왼쪽 언덕의 능이 문종, 오른쪽 언덕의 능이 현덕왕후의 능으로 홍살문을 비롯하여 정자각·비각 등을 하나씩만 만들었다.
병풍석에는 이전 왕릉에 있던 방울·방패 무늬가 사라졌고 구름 무늬가 도드라지게 표현되었다. 상석을 받치는 고석()도 5개에서 4개로 줄었다. 묘역 가장 아랫단에는 머리·눈·코가 큼직하고, 장검을 두 손으로 짚고 선 무인석이 있고, 튀어나온 눈과 콧수염 등이 이국적인 문인석이 있다. 문종 이전 왕들의 능에는 신도비가 세워졌으나 문종 때부터는 신도비가 건립되지 않았다.현덕왕후는 단종을 낳고 병을 얻어 1441년(세종 23) 문종보다 11년 먼저 세상을 떠났고, 안산의 소릉에 묻혔다. 단종 복위사건에 의해 1457년(세조 3) 추폐되었다가 1512년(중종 7) 복위되어 다음해 봄 문종이 묻혀 있는 현릉으로 이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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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창작 6

 

 

퇴고의 중요성

아무리 잘쓴 글도 더듬어 보면 퇴고할 부분이 발견되기 마련이다.

유명한 헤밍웨이도 노인과 바다를 2백여 회나 고치고 다듬었다고 한다

 

  

퇴고의 4가지 원칙

 

1.빠진 부분과 덧 붙여야 할 부분

2.불필요한 부분이나 지나친 부분

3.글의 앞뒤 연결및 강조 관계

4.문법, 표기, 부호

 

 

퇴고의 기준

 

 - 주 제 -

1.주제가 분명하게 드러나는가

2.주제의 표현은 정확한가

3.주제 벗어나 다른 게 강조되고 있지 않은가

 

 

 - 내 용 -

1.문맥은 정확한가

2.의도한 대로 내용이 되어 있는가

3.내용을 표현함에 논리적 모순은 없는가

4.저속한 내용은 없는가

5.내용의 모방은 없는가

 

 

 - 단 락 -

1.단락의 구분은 정확한가

2.단락과 단락의 연결은 정확한가

3.관점의 중복은 없는가

4.논점,화제의 제시에 중복은 없는가

5.시제의 혼란은 없는가

6.능동,피동의 혼란은 없는가

7.부자연스런 점은 없는가

 

 

 - 문 장 -

1.문장의 흐름은 정확한가

2.한 문장에 두가지 생각이 중복되지 않는가

3.주어와 서술의 관계는 정확한가

4.문장이 너무 길지는 않은가

5.불필요한 문장은 없는가

6.수식어는 정확한가

7.더 좋은 문장으로 바꿀 수는 없는가

 

 - 용 어 -

1.틀린 용어는 없는가

2.표준말 사용은 정확한가

3.특수 용어에 대한 처리는 정확한가

 

 

 - 문법. 표기. 부호 -

1.접속사의 사용은 정확한가

2.조사의 사용은 정확한가

3.문장 부호는 정확하게 사용되었는가

4.한글 맞춤법은 정확한가

5.띄어 쓰기는 맞는가

6.원고지 쓰는 법은 정확한가

 

 

* 제목이 글 내용과 적절한가

 

제목은 -

1.내용과 너무 동떨어진 것은 피한다

2.평범하지 않고 특색있는 제목을 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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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자의 주장이 언제나 정의다

 

 

17세기 프랑스의 우화시인인 라 풍테에느의 우화시 제1권 제10화인  늑대와 어린 양제 1행에 쓰인 말이다.

 

라 풍테에느가 살던 시대는 날으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위세 당당한 루이14세였다. 

 

그러므로  태양왕을 등에 업은  귀족과 성직자들의  횡포는 이루 말할 수 없었고  백성들의 원성도 대단했다.

 

"가장 강한 자의 주장이 언제나 정의다"

 

이  명언은 봉건시대 지배자의 압정을 풍자한 통렬한 아이러니다.

 

늑대와 어린양■의 이야기는 짧다.

 

목마른 어린양이 물을 마시던중 늑대가 나타나 물을 더럽히는 무례한 놈이라고 꾸짖는다 

어린양은 사정하면서 스무 발짝 아래 내려가서 마시겠노라고 해도 안된다는 것이다. 

늑대는 어린양에게 " 작년에 네 놈이 나한테 욕을 했지 " 라고 트집을 잡는다. 

어린양은 대답하기를 " 작년에는 내가 이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는걸요 ".라고 대답하자  

늑대는 그렇다면"니 형이나 니 아버지거나 가족임에 틀림없다" 라고 말도 안되는

트집을 잡으며 어린양을 끌고가 잡아 먹는다

그래서 가장 강한 자의 주장이 언제고 정의다 라는 말이 생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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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창작 5

 

■ 높임말과 보통말의 사용 ■

1.- 하였습니다 (높임말)

2.- 했다 (보통말)

3.- 했어요(예사 높임말)

 

* 하였습니다는

오랫동안 사용해온 형식으로 동화는 으례 그렇게 쓰는 것으로 인식 하지만 반성의 소리가 높다.

하였습니다는 문장의 템포가 늦고 너무 교훈적,교육적,전통적이어서 부담가며 깔끔하거나 참신하지 못하다는 여론이 있다.

"하였습니다" "했지요"를 적절히 병행해서 사용한다.

 

예) 아저씨는 침착하게 차를 몰아 할아버지 마을의 산모퉁이를 돌아 오르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였지요 내가 아저씨를 얼핏 본 것은 ...

 

예문에서 "바로 그때였습니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 "바로 그때였지요"썼을때

다소 문장 변화를 주면서 템포를 약간 앞당긴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또는 " 주인아저씨는....돌아 오르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

내가 아저씨를 얼핏 본 것은.....

" 얼핏 동화스런 분위기가 아니고 소설의 한 구절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지 ?

 

또 다르게

 

"아저씨는...돌아 오고 있었지.바로 그때였어. 

내가 아저씨를 얼핏 본 것은... "

 

이야기로 들려주는 보통말은 소설같지만은 않고 변화가 있으며 친근감이 있지 않은가.

 

■ 대화구와 사고구의 구사법 ■ 

 

문장을 생동감 있게 그려 가는데 필수적인 게 대화구와 사고구다.

대체로 대화구는 큰 따옴표 " "를 쓰고 사고구는 작은 따옴표 '' 를 사용한다.

때로는 짧은 대화구 하나가 몇장 분량의 지문보다 소중 하고 독자의 이해와 현장감을 주는데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러나 대화구의 과용과 남발은 경계한다.

 

* 그렇다고 사고구의 남용은 독자들의 사고를 자칫 막아버리고  그 폭을 줄이는 잘못을 범할 수 있다.

 

* 적절한 한두 귀절의 사고구는 의미 전달에 탁월한 효과를 보일 때가 있다.

 

예) '저 도깨비란 녀석 어떻게 혼내 주어야 겠는데 하는 것과 '도깨비   녀석에게 혼을 좀 내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곰곰히 생각하였습니다. 좀처럼 좋은 생각이 떠 오르지 않습니다.' 라고 하는 것은 실감면에서  다른 것이다

 

* 문장의  처음과  가운데,

  끝맺음의 순서가 이상적이다.

 

* 글은 작가편이 아닌 독자편에서 써야 한다.

 

* 동화를 쓸때 누구나 한 번쯤 안데르센의 대표작들을 읽어 보고  동심으로 들어가라

 

* 너무 주제에 치우쳐 큰소리를 내거나

철학적 종교적인 구절들을 노출시켜 흥미를 떨어뜨리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초보자는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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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순조 (,재위 1800~1834)의 원자로 왕세자(효명세자)로 책봉되고,사후에 왕으로 추존된 익종(1809~1830)과 부인 신정왕후() 조씨(1808~1890)를 합장한 무덤이다.효명세자는1830년(순조30) 5월6일 창덕궁 희정당에서 숨을 거두었고,같은 해 8월 4일 서울 석관동에 있는 경종 무덤인 의릉() 좌측에 무덤을 만들어 연경묘()라 하였다. 1835년(헌종 즉위) 5월 19일 효명세자가 왕(익종)으로 추존되면서 연경묘는 수릉()이라는 능호를 받았다.그 후 풍수상의 문제로 2번에 걸쳐 능을 옮겨 1855년(철종 6) 현재의 위치인 동구릉(, 사적193호)의 태조 무덤 건원릉 좌측에 자리 잡았다. 신정왕후는 1890년(고종 27) 4월 17일 경복궁 흥복전에서 숨져 같은 해 8월 30일 익종과 합장되었다.
조선 왕릉은 일반적로 3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수릉은 2단으로 되어 있다. 봉분이 있는 윗단에는 봉분을 둘러싼 12칸의 난간석과 혼유석 1좌, 석양()·석호() 각 2쌍 망주석 1쌍이 있으며 3면의 나지막한 담으로 둘러싸여 있다. 아랫단에는 무인석·석마() 각 1쌍, 문인석·석마 각 1쌍이 배치되어 있다. 문인석은 길쭉한 얼굴에 눈과 입술이 가늘게 표현되고, 어깨를 움츠리고 목을 앞으로 빼고 있는 형태로 조선 후기 인물 조각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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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창작

 

 

쓸거리가 정해지면 

 

1.어떤 차례로 쓸까 ?

2.주제의 비중을 어떻게 배치할까 ?

3.공감대 형성은 알맞게 되었나 ?

 

1.차례 정하기

보통 시간의 흐름이나 사건의 발단,전개,절정,결말등의 보편적인 방법을 쓰는 게 통념이지만 동화의 경우는 예외가 많다.

결말부분이  앞에  오기도 하고 , 전개부분이 앞서기도 한다. 

 

2.주제의 비중 정하기

주제가 너무 노출안되게 감안하고 있는가 ?

처음,가운데,끝맺음에 주제가 골고루 녹아 들도록 배치하였는가 ?

 

3.공감대 형성의 노력

 

주제와 예문은 적절한가 ?

주제와 관계가 멀거나(적절하지 못한것) 감동을 줄만큼  호소력이 없으면  독자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게 된다.

 

서두의 중요성

 

작품의 서두는 사람으로 치면 얼굴과 같다.

독자들은 서두를 읽고 더 읽어 나갈 것인가를 결정한다.

더구나 서두는 한 작품의 발단부분이므로 서두를 통하여 독자는 결과나 흥미 유무를 예견한다.

 

서두에 실패하면 그 글도 실패라는 말은 진리.

 

* 동화는 내용이 소박하고 진솔해야 한다.

 

*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부담이 없고 쉬우면서도 많은 것을 느끼게 해야 좋은 것이다  

 

* 미사여구를 필요 이상으로 사용하면 실감도 줄어들고 진실성도 결여된다.

 

* 시적인 문장이란 적절한 비유와 언어의 절제도 내포하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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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14대 왕 선조( 1552~1608, 재위 1567∼1608)와 원비 의인왕후() 박씨(1555~1600), 계비 인목왕후() 김씨(1584~1632) 세 사람의 무덤이다. 9개의 조선왕릉(건원릉.현릉·목릉·휘릉·숭릉·혜릉·원릉·수릉·경릉)으로 이루어진 동구릉(, 사적 제193호)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같은 능역 안의 각각 다른 언덕에 왕릉과 왕비릉을 조성한 동원이강릉() 형식으로, 왼쪽에 선조, 가운데에 의인왕후, 오른쪽에 인목왕후의 능이 있다.선조의 능에는 3면의 곡장(; 나지막한 담)이 둘러져 있고, 봉분 아랫부분은 12지신상과 구름 문양이 조각된 병풍석으로 감싸여 있다. 봉분 바깥쪽으로 난간석을 비롯하여 혼유석,망주석 1쌍 장명등, 석양()·석호() 각 2쌍 문인석·무인석 각 1쌍, 석마() 2쌍 등의 석물이 배치되어 있다.의인왕후릉과 인목왕후릉은 비슷한 형식으로, 병풍석이 생략된 채 난간석과 혼유석·망주석·장명등 등의 석물이 있다.목릉의 능역은 원래 의인왕후 박씨의 왕비릉인 유릉()이었다. 목릉은 1608년(광해군 즉위년) 태조의 능인 건원릉 서쪽에 조성되었는데 터가 좋지 않고 물이 찬다 하여 1630년(인조 8) 유릉 자리 즉 현 위치로 옮겼고, 이때 유릉과 목릉의 능호를 합칭하여 목릉이라 불렀다. 1632년 인목대비의 능을 조성하여 세 개의 능을 이루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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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니문

 

허니문이란

다정함과 쾌락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결혼후 최초의 1개월이다 라고 사무엘 존슨은 정의했다 합니다.

 

허니문의 유래는 여러 설이 있는데 유력한 설은 고대 노르웨이에서의 풍습이라 합니다.과거 노르웨이에서는 납치혼도 성행했다는데,남자가 여자를 납치해서 여자의 가족이 찾을 수 없게멀리 떨어진 곳으로 도망을 가 한 달 동안 숨어지내면서 여자가 임신하면 가족을 찾기도 포기하고 결혼을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이렇게 되면 비로소 남자는 여자를 데리고 돌아가는데,이 숨어있는 기간 한 달 정도가 허니문이 되는 것이죠. 허니문 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고대 바빌론 시대에 신부 아버지가 신랑에게 벌꿀로 만든 술인 미드 (mead)를 선물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하는데 신랑은 이 술을 한 달 동안 마셨다고 합니다.신랑에게 미드를 마시게 하는 것은 후손을 갖기를 기대하는 것인데,열량이 높은 꿀을 마시는 것을 정력증진 식품으로 봤기 때문이라네요.즉 미드를 마시는 한 달의 기간동안을 단둘이서 달콤한 시간을 보내는 시간이라 정의하는 것을 허니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옥스퍼드 사전에.....

moon이란 천체의 달이며 둥근 만월의 달이 점차  깎여 없어지는 것 처럼, 부부 정도 점차 줄어들어 없어진다는 의미.

결국 달콤함도 일시적이라는 뜻.....  ㅠ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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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24대 헌종왕과 첫 번째 왕비 효현왕후 김씨와 두 번째 왕비 효정왕후 홍씨의 능이다.
경릉은 세 개의 봉분을 나란히 조성한 삼연릉(三連陵)의 형태로 조선왕릉 중 유일하다.
정자각 앞쪽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이 헌종 가운데가 효현성황후 오른쪽이 효정성황후의 능이다.
세 봉분은 모두 병풍석을 생략하고 난간석을 둘렀으며, 난간석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각 봉분 앞에는 혼유석을 따로 설치하였다.
능침 아래에는 정자각, 비각, 홍살문, 판위 등이 배치되었으며, 비각에는 한 개 표석이 있다
표석은 대한제국 선포 후 황제 추존으로 바꾼 표석으로, 전면에는 ‘대한 헌종성황제 경릉 효현성황후 부좌 효정성황후 부좌’라 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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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창작3

 

 

* 재미에는 

 

1.감동을 주는 글

2.마음을 즐겁게 하는 글

3.모범이 되는 글

4.깨달음을 주는 글

 

일반적으로 창작은 소재.구상.기술.퇴고.감상의 단계를 밟게 된다

 

예) 본 것 :주렁 주렁 사과가 매달린 사과나무 한 그루.

 

 생각한 것 :열매를 나눠 주는 손(부처님의 손)

 

본 것 : 냄새가 나는 껍질 속에 싸인 은행나무 열매 

 

생각한 것 : 귀여움을 받는 은행이 될 때가지 온갖 괴로움을 겪어야 하는 인내심

 

* 작가는 귀를 활짝 열고 가슴으로 듣고 , 느끼며 생각한다.

 

* 마음 문을 활짝 열고 주변을 자세히 살피는 버릇을 길러야 한다.

 

* 사물이나 행동을 어떻게 가슴으로 옮기느냐가 제일 중요한 첫 관문이다.

 

인간성 회복을 주제로 다룬다면

 

1.참다운 삶에 대한 이상 추구

2.인간애 강조

3.물질문명의 비정 고발

4.경노사상과 애향심 전통계승

5.가치관의 붕괴에 대한 경고

6.동심의 부재에 대한 경각심

 

자연애를 주제로 다룬다면

 

1.동 식물에 대한 관심과 사랑.

2.산과 들 땅에 대한 관심과 사랑.

3.샘물. 시냇가. 강물. 바다.구름.비. 눈. 이슬.무지개.안개에 대한 관심과 사랑.

4.천체 .우주에 대한 관심과 사랑.

 

향토애,조국애,인류애를 주제로 다룬다면

 

1.내 고장의 위치와 지형.

2.내 고장의 특색과 명소

3.내 고장의 인심과 인물

4.내 고장의 역사와 전설

5.내 고장의 풍습

6.내 조국의 역사와 전통

7.내 조국의 현재와 미래

8.인류의 이상

 

예) 인간애

 

들길을 가다가 우연히 활짝 핀 풀꽃 무더기를 보았다 . 

풀 위에 쏟아져 내리는 햇빛에 눈길을 준다.

이렇듯 값비싼 장미꽃이나 모란꽃

위에도 햇빛은 골고루 비치고 있다.평등.

인간도 빈부의 차나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차별대우를 받아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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