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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언컨데 풍광만큼은 사량도 지리산이 으뜸입니다.

몇 년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통영의 사량도를 올해는 반드시 간다는 생각으로 산악회 예약을 했더니만 하루 전날 인원이 차지 않아 취소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이유는 사량도는 봄에 많이 가는데 지금은 너무 더워서 가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어쨌거나 가보자는 생각에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밤11시 30분차를 타고 통영터미널에서 새벽 3시 40분경에 내렸다. 터미널안에서 할일없이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다가 5시경 건너편 편의점에서 컵라면으로 아침을 때우고 편의점 앞 버스정류장에서 6시10분에 675번 버스를 타고 가오치 선착장으로 갔다.

가오치선착장에서 사량도 들어가는 7시 첫배를 타고 40여분을 달려 사량도에 도착....돌아갈 오후 2시 배편을 예약후 기다리고 있던 버스를 타고 산행 들머리로이동했다 (이 버스를 놓치면  2시간 간격이므로 산행후 예약하던지 암튼 최대한 빨리 예약하고 타야 한다) 약 8시30분부터 산행을 시작하여 12시 30분에 하산하였다. 2시배를 기다리며 시원한 막걸리와 점심을 맛나게 먹고 2시배를 타고 가오치선착장으로 갔다.가오치선착장에 내리자마자 고맙게도 저만치 270번버스가 기다리고 있다.버스를 타고 3시 30분경에 통영터미널에 도착....아뿔싸 ! 서울 올라가는 고속버스를 예약할려고 했더니 매진되고 저녁 7시 20분차 밖에 없었다.4시간 가량을 어찌 기다리나 ....ㅠㅠ 그러나 함께간 친구의 재치로 4시 우등고속버스를 타고 아주 편하게 서울로 올라 올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개인적으로 가는 사량도의 지리망산 산행은 돈은 따블로 들면서 고생했지만.....능선을 따라 펼쳐지는 기암괴석과 사방으로 보여지는 남해바다의 풍경은 환상적이었고 아름다운 풍광으로는 으뜸이어서 최고의 산행이 아니었나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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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7대 왕 세조(世祖 1417~1468, 재위 1455∼1468)와 세조의 비 정희왕후(貞熹王后) 윤씨(1418∼1483)의 무덤이다. 1970년 5월 26일 사적 제197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왕릉 최초로 왕과 왕비의 능을 서로 다른 언덕 위에 따로 만든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 형식을 취하였고, 두 능의 중간지역에 하나의 정자각(丁字閣)을 세웠다.세조의 유언에 따라 봉분 내부 돌방을 만들지 않고 회격(灰隔; 관을 구덩이 속에 내려놓고, 그 사이를 석회로 메워서 다짐)으로 처리하였다.무덤 둘레에 병풍석을 세우지 않았으며, 이전에 병풍석에 새겼던 12지신상은 난간석에 새겼다. 또 능역 아래쪽에는 홍살문에서 정자각에 이르는 길인 참도(參道)가 생략되어 있다.이렇게 간소하게 능을 조성함으로써 부역인원과 조성비용을 감축하였는데 이는 조선 초기 능제(陵制)에 변혁을 이루는 계기가 되었고, 이런 상설제도는 이후의 왕릉 조성에 모범이 되었다. 능 주위에는 문인석·무인석·상석·망주석·석호(石虎)·석양(石羊) 등의 석물이 배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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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릉 [효종대왕]

조선 제17대 왕 효종( 1619~1659, 재위 1649∼1659)과 부인 인선왕후() 장씨(1618∼1674)의 무덤이다. 세종과 소헌왕후 심씨의 무덤인 영릉()과 함께 1970년 5월 26일 사적 제195호로 지정되었다.왕릉과 왕비릉을 좌우로 나란히 배치한 것이 아니라 아래위로 배치한 쌍릉 형식이다. 풍수지리에 의한 이런 쌍릉 형식은 조선왕릉 중 최초의 형태인데 경종과 선의왕후의 무덤인 의릉()도 이런 형태를 띠고 있다.처음엔 구리시 인창동 동구릉 ()의 태조 무덤인 건원릉() 서쪽에 있었으나 석물에 틈이 생겨 봉분 안으로 빗물이 샐 염려가 있다 하여 1673년(현종 14) 세종의 무덤인 영릉() 동쪽으로 능을 옮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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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릉은 조선 6대 단종의 부인인 정순왕후(1440∼1521)의 무덤이다.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준 뒤 그에 의해 죽임을 당하자 왕후는 왕실을 떠나 작은 집을 지어 평생 흰옷만 입으며 고기와 생선은 먹지 않았다고 한다. 왕후가 후사(後嗣) 없이 승하(昇遐)함에 부왕(夫王) 단종(端宗)의 누이 경혜공주(敬惠公主)의 시가(媤家)인 정씨가(鄭氏家)의 묘역에 장례하였으며, 봉사(奉祀)도 정씨가에서 하여왔다. 숙종 24년(1698)에 단종이 왕으로 복위 되면서 정순왕후라 봉해졌고 왕후의 무덤을 사릉이라 했다. 무덤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을 하지 않았고, 무덤 앞에 상석과 양석, 둘레돌이 있으며 그 밖으로 3면을 낮은 담으로 쌓았다. 단종의 무덤이 장릉으로 봉해졌을 때에도 병풍석과 난간석을 세우지 않고, 동물모양의 돌만 세웠는데 이는 왕릉으로 봉해진 것에 대한 예에 따른 것이다. 사각지붕 모양의 명등석은 장릉과 같은 것으로 숙종대의 양식이 잘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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