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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 9대 왕 성종( 재위 1469∼1494)의 원비인 공혜왕후 한씨(1456∼1474)의 무덤이다.  공릉·순릉·영릉으로 이루어진 파주삼릉(, 사적 제205호) 경내에 있다. 공혜왕후는 1474년(성종 5) 4월 15일 왕비로 봉해진 지 5년 만에 창덕궁 구현전에서 1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6월 7일 현 위치에 안장되었다.봉분을 감싸고 있는 12칸의 난간석은 태조의 건원릉(), 태종의 헌릉() 난간석을 본떠 만든 것이다. 난간석 밖으로는 석양()과 석호() 각 2쌍이 교대로 배치되어 있다. 봉분 앞으로 상석이 있고, 상석 좌우에 망주석 1쌍이 있으며, 봉분 뒤쪽으로는 곡장(; 나지막한 담)이 설치되었다.봉분 아랫단에는 문인석 1쌍과 석마() 1쌍이 마주보고 서 있고, 중앙에 팔각 장명등이 있다. 가장 아랫단에는 무인석 1쌍과 석마 1쌍이 마주 서 있으며, 능원 아래에 정자각과 비각, 홍살문이 있다. 비각에 보호된 비석은 1817년(순조 17) 9월 세운 것으로, 전면에 ‘조선국공혜왕후순릉’이라 새겨졌다. 병풍석을 세우지 않았을 뿐 조선 초기의 능제()와 비슷한 형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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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릉은 단릉으로 조성된태조의 계비 신덕왕후의 능이다. 처음에는 현재 영국대사관 자리에 능역이 조영되었으나, 태조가 승하한 후, 원비의 태생인 태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신덕왕후는 평민으로 강등되고, 현재의 위치로 천장되었다. 따라서 왕릉제인 병풍석이나 난간석은 봉분에서 사라지고, 4각 장명등, 고석, 상석 등만이 원래의 것으로 추정된다. 그 중 장명등은 고려시대 공민왕릉의 양식을 따른 것으로 조선시대 능역의 가장 오래된 석물인 동시에 예술적 가치가 높다.정릉의 공간은 일반 왕릉의 영역이 직선축을 이루는 데 비해, 자연 지형에 맞추어 절선축으로 조성되어 있다. 능역 입구 금천교의 모습은 우리나라 자연형 석교의 조형기술을 볼 수 있으며 재실터 양 옆으로 서 있는 느티나무의 보호수도 살펴 볼만한 가치 있는 역사경관이다

역사탐방

극진히 사랑했던 현비가 갑자기 승하하자 태조는 도성 안인 현 덕수궁 뒤편 현재 영국대사관 자리로 추정되는 곳에 능역을 조성하고 강씨 봉분 우측에 훗날 자신이 묻힐 자리까지 함께 마련하여 능호를 정릉으로 정하였다. 아울러 능의 동편에 흥천사(興天寺)라는 절을 지어 재궁으로 삼고 능침사찰로 하였다.그러나 잘 조성된 정릉은 신덕왕후의  왕자인  방번과 방석이 왕자의 난을 거치면서 살해되고  태조의 원비 신의왕후의  다섯 번째 소생인 태종이 즉위하면서부터 푸대접을 받았다. 태종은 정릉의 능역 100보 근처까지 주택지로 정하여 세도가들이 정릉 숲의 나무를 베어 저택을 짓는 것을 허락하고,청계천 광통교(현재의 광교)가 홍수에 무너지자 능의 석물 중 병풍석을 광통교 복구에 사용하였으며, 그 밖에 목재나  석재들은  태평관을 짓는 데 쓰게 하도록 하였다.  정릉이 있던 이 일대는 지금까지 정동(貞洞)으로 불리고 있다. 그로부터 260여년이 지난 1669년(현종 10) 신덕왕후는 현종에 의해 복권되면서 그 능이 현재와 같이 재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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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18대 왕 현종( 1641~1674, 재위 1659∼1674)과 그의 비 명성왕후() 김씨(1642~1683)의 무덤이다.
현종은 1674년(숙종 즉위년) 8월 18일 34세의 나이로 창덕궁 대조전 양심각에서 숨을 거뒀다. 팔도의 승군 2,650명을 징발하여 능을 조성하였고, 12월 13일 조선 태조의 무덤인 건원릉() 남서쪽 산줄기에 예장하였다. 명성왕후는 1683년(숙종 9) 12월 5일 창경궁 저승전 서별당에서 세상을 떠나 현종 옆에 묻혔다.하나의 곡장(; 나지막한 담) 안에 왕릉과 왕비릉을 나란히 조성한 쌍릉으로, 난간석이 두 능을 감싸고 있다.병풍석은 없으며, 석양()·석호() 각 2쌍 망주석 1쌍 장명등 1개 문인석 석마() 각 1쌍, 무인석·석마 각 1쌍의 석물을 갖추었다.장명등과 망주석에는 인조 무덤인 장릉()의 석물에서처럼 꽃무늬가 새겨져 있으며,망주석 위쪽에 세호라고 불리는 작은 동물조각이 뚜렷하게 조각되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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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산4-2번지 동구릉 안에 있는 조선 제1대 왕 태조의 무덤이다.

9개의 조선왕릉(건원릉·현릉·목릉·휘릉·숭릉·혜릉·원릉·수릉·경릉)으로 이루어진 동구릉(, 사적 제193호) 경내에 있다. 전체적으로 고려 공민왕의 능인 공민왕릉(현릉)을 본떠 만들었으나 고려시대 왕릉엔 없는 곡장(; 나지막한 담)이 봉분 주위를 두르고 있고, 석물들은 남송 말기 중국풍을 따르고 있다.

봉분에는 다른 왕릉처럼 잔디를 심지 않고 억새풀을 심었는데  고향을 그리워했던 아버지를 위해 태종이 태조의 고향에서 흙과 억새를 가져다 덮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12지신상을 새긴 12면의 화강암 병풍석이 봉분을 감싸고, 봉분 밖으로는 12칸의 난간석이 둘러져 있다.태조는 1408년(태종 8) 5월 24일 창덕궁 광연루 별전에서 숨을 거뒀다.영의정 하륜() 등이 산릉지()를 물색하다가 그해 6월 28일 현 위치로 결정하였고, 7월 5일 충청도·황해도·강원도에서 군정() 약 6,000명을 징발하여 7월 말부터 역사()를 시작하고 석실을 만들었다.   9월 7일  태종이  백관을 거느리고  빈전에 나가 견전례를 행하고 발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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