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ALL

조선 제13대 왕 명종(재위 1545∼1567)과 명종비 인순왕후 심씨의 능이다. 명종은 조선 중종과 문정왕후의 아들로 1534(중종 29)에 태어났으며 1545(인종 1)에 왕위에 올랐는데 어머니인 문정왕후가 8년 동안 수렴청정하였고 1567년 경복궁 양심당에서 죽었다. 왕비 인순왕후는 청릉부원군 심강의 딸로 1532(중종 27)에 태어나 1545년에 왕비로 책봉되었으며  1575(선조 8)창경궁 통명전에서 죽었다명종이 34세로 죽자 이곳을 능지로 삼아 치장하였으며, 능 관리를 위한 관원으로  .참봉 각 1명을 두었다.인순왕후 사후 왕비의 능도 왕의 능과 함께 나란히 앉혀 쌍릉을 이루었다.능제는 국조오례의식에 따랐고 왕릉과 왕비릉에 모두 구름무늬와 십이지신상이 새겨진 12면병풍석두르고 만석 중간에 12지를 새겨넣었다.또한 12칸의 난간석과 상석1,망주석1,양석 2,호석 2쌍과 3면의 곡장이 있다.한 단 아래에 문인석 1, 마석 1쌍과 가운데 명등석이 있고, 그 아래에는 무인석 1, 마석 1쌍이 있다.무덤 아래에는 정자각과 비각이 있고 입구에 홍살문이 있다.

1호선 석계역에서 내려 버스1156번을 타고 버스정류장 태강릉 앞에 내렸더니 건너편에 태릉이 있었다.

매표소에서 비공개지역 예약하고 왔다 했더니만 이곳이 아니란다. ~

그럼 진작 예약할때 얘기해주지....다시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 더 가 삼육대학에서 내림 삼육대학 정문 옆에 있다.

담벼락에 달린 조그만 입구가 열려 있었고 안으로 들어가자 관람객이라곤 하나뿐인 나를 위해 관리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맞춰 문열어 줄려고 파견나와 기다리는 관리인에게 미안한 생각에 오래 지체 할 수 없어 빠른걸음으로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찾아가는법

전철 석계역 6번출구 -  버스정류장에서 1156번를 타고- 태강릉 앞에서 내리지말고 비공개지역 강릉을 가야하므로 두 정거장 더 가 삼육대앞에서 내리면 길 건너 삼육대학 정문 옆에 강릉이 있습니다. 

* 예약 : 태릉관리소 : 0  2 - 9 7 2 - 0 3 7 0  

매주 요일.요일 / 1일  2회 : 9시 ~11시 .14~ 16시 . 최소 1일전에 예약하여 관람요

▼ 신들의 정원 다른 곳도 보세요

LIST
SMALL

조선 제12대 왕 인종( 1515~1545, 재위 1544~1545)과 인종의 비 인성왕후() 박씨(1514~1577)의 무덤이다. 3개의 왕릉(희릉·효릉·예릉)과 후궁·대군·공주의 무덤들로 이루어진 서삼릉(西, 사적 제200) 경내에 있다. 왕릉과 왕비릉이 한 곳에 나란히 놓인 쌍릉으로, 효성이 지극했던 인종을 기려 능호도 효릉()으로 정해졌다.인종은 재위 8개월 만인 15457월 경복궁 청연루에서 숨을 거뒀다. 같은 해 1015 부모 옆에 묻어달라는 인종의 유언에 따라 부왕인 중종과 어머니 장경왕후의 능인 정릉() 옆에 능을 조성하였다. 하지만 1562(명종 17) 정릉이 현재의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의선릉() 옆으로 옮겨갔고, 장경왕후의 능은 희릉()이라는 능호로 바뀌어 효릉 옆에 있다.인종이 자신의 장사를 검소하게 치르도록 명한 데다 당시 인종의 외가인 대윤()과 명종의 외가인 소윤() 사이의 권력투쟁으로 인해 명종과 문정왕후 측에서 상례절차를 줄이고 능역 조성을 소홀히 한 것으로 여겨진다. 1577(선조10)1129  인성왕후  박씨가 세상을 떠나  왕비릉을 조성했을 때  왕릉에 병풍석을 설치하고 다른 석물들도 개수하였다.

비공개지역이므로 미리부터 예약해야 한다 지금은 어떨런지 모르지만 하여간 1주일전 서삼릉출장소에 전화로 예약하고 새벽밥을 먹고 길을 나섰다. 아름다운 길 서삼릉입구에 도착하니 비공개지역 효릉을 답사하고자 하는 몇 몇의 학생들과 관람객들이 있었다.서삼릉 안에는 참으로 볼 것이 많다.효릉뿐만 아니고 태실,소경원,왕자.공주묘,후궁묘까지 일반인들이 잘모르는 비공개지역이 많았다.해설사의 자세한 안내로 2시간 넘게 조선왕릉의 아름다운 오솔길을 걸으며 선조님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던 유익한 시간이었다.

찾아가는법

전철 삼송역 5번출구로 나와 버스정류장에서 041번 마을버스를 타고 - 약 10여분을 달려 삼송동 허브나라에서 내려 -  길건너 서삼릉 안내판 방향으로 약 15분 쉬엄쉬엄 걸어가면 원당목장 경마교육원옆에 서삼릉이 있다.

 신들의 정원 다른 곳도 보세요  

LIST
SMALL

조선 제27대 왕 순종( 1874~1926)과 비 순명황후 민씨, 계비 순정황후 윤씨 세 사람을 합장한 무덤이다. 고종과 명성황후의 무덤인 홍릉()과 함께 1970526일 사적 제207호로 지정되었다.순명효황후는 순종이 즉위하기 전인 1904(광무 8) 115일 숨졌고, 이듬해 14일 양주 용마산 아래 언덕에 예장되었다. 1926425일 순종이 세상을 떠나 그해 611일 홍릉 왼쪽 산줄기 현 위치에 안장되면서 순명효황후를 이장하여 합장하였고, 1966년에는 순정효황후가 합장되었다.조선시대의 마지막 왕릉인 유릉()은 조선왕릉 중에서 하나의 봉분에 세 명을 합장한 유일한 동봉삼실릉()이다. 홍릉처럼 황체릉 양식으로 조성되어 있지만 홍릉에 비해 능역 규모가 약간 작은 편이다. 봉분을 감싼 병풍석과 난간석에는 꽃무늬가 새겨졌으며 혼유석 망주석·사각.장명등의 석물이 배치되어 있다. 대부분의 조선 왕릉에 설치된 석양()과 석호() 없다.능이 조성된 언덕 아래에는 정자각 대신 침전(殿)이 있고, 침전 앞 참도() 양쪽에 문인석·무인석과 기린·코끼리·사자·해태·낙타·말 등 동물 석상이 차례로 배치되었다. 침전 외에 비각.홍살문 수복방.재실 등의 부속건축물이 있다.

찾아가는길

 신들의 정원 다른 곳도 보세요 ▼ 

LIST
SMALL

조선 제26대 왕 고종( 1852~1919)과 비 명성왕후 민씨(1851~1895)를 합장한 무덤이다. 순종과 순명황후,순정효황후의 무덤인 유릉()과 함께 1970년 5월 26일 사적 제207호로 지정되었다.1895년 8월 20일 경복궁 곤녕전에서 시해된 명성황후는 1897년 11월 21일 서울 청량리에 묻혔다. 고종은 1919년 1월 21일 덕수궁 함녕전에서 숨져 3월 4일 현 위치에 예장되었고, 그때 명성황후의 능이 풍수지리상 불길하다는 이유로 이장되어 고종의 능에 합장되었다.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기 때문에 홍릉은 황제릉의 양식을 따라 명나라 태조의 효릉()을 본떠 조성되었다. 꽃무늬를 새긴 12면의 병풍석으로 봉분을 둘렀으며, 봉분 밖으로 역시 꽃무늬를 새긴 12칸의 난간석을 설치하였다. 혼유선,망주석,사각 장명등의 석물을 배치하였고, 봉분 밖으로 3면의 나지막한 담을 둘렀다. 대부분의 조선 왕릉에 설치한 석양()과 석호()는 없다.능이 조성된 언덕 아래쪽에는 정자각 대신 정면 5칸·측면 4칸의 일자형 침전(殿)을 세웠다. 침전 앞의 참도() 양 옆으로 문인석·무인석과 기린·코끼리·사자·해태·낙타·말의 동물 석상을 차례로 배치하였으며, 장대한 크기의 문·무인석은 금관을 쓴 전통적 기법으로 조각되었다. 침전 외 부속건축물로 비각, 홍살문 수복방·재실 등이 있다

찾아가는길

 신들의 정원 다른 곳도 보세요

 

LIST
SMALL

조선 23대 순조대왕(재위 1800∼1834)과 순원왕후 김씨(1789∼1857)의 무덤이다. 순조는 11세에 왕위에 올랐으나 나이가 어려서 왕대비인 정순왕후 김씨에게 정치를 돌보게 됨으로써 외척에 의한 정치가 극에 달하였고, 사회가 혼란했다. 인릉은 무덤에 병풍석을 세우지 않았고, 12칸의 난간석을 둘렀으며 양석과 마석·상석·망주석을 세웠다. 문인석·무인석의 조각은 사실주의적으로 섬세하고 아름답다. 언덕 아래에는 2개의 비석을 세웠다. 순조는 18341113일 경희궁 회상전에서 숨을 거뒀다. 1835(헌종 1) 419일 경기도 파주에 있는 인조 무덤장릉() 왼쪽 산줄기에 예장하였다가 풍수가 좋지 않다 하여 1856(철종 7) 1011일 현 위치로 옮겼다. 순원왕후는 185784일 창덕궁 양심각에서 숨져 그해 1217일 인조와 합장되었다 원래 제사를 지내는 건물인 재실은 무덤과 같은 지역에 있는데 헌릉·인릉의 재실은 서로 떨어져 있다 

찾아가는길

 신들의 정원 다른 곳도 보세요

LIST
SMALL

조선 제3대 왕 태종( 1367~1422, 재위 1400~1418)과 원경왕후 민씨(1365∼1420)의 무덤으로, 인릉(; 순조와 순원왕후 김씨의 무덤)과 함께 1970년 5월 26일 사적 제 194호로 지정되었다.1420년(세종 2) 7월 10일 창경궁 별전에서 원경왕후가 세상을 뜨자 태종의 명으로 같은 해 9월 17일 대모산 기슭에 왕후의 능을 조성하였다. 그로부터 2년 후인 1442년(세종 4) 태종이 승하하자 그해 9월 6일 세종이 어머니 원경왕후의 능 옆에 태종의 능을 조성하였다.헌릉은 두 개의 능이 같은 언덕에 조성된 쌍릉으로, 조선 태조의 건원릉 형식을 따랐다. 두 능은 12칸의 난간석을 둘러 서로 연결되어 있다. 봉분의 아랫부분은 병풍석이 감싸고, 능 앞의 석물은 망주석.혼유석.장명등 각 1쌍, 석호()·석양() 각 4쌍, 문인석.무인석·석마() 각 2쌍이 배치되었다. 이는 고려 공민왕릉(현릉)을 기본으로 삼은 배치법으로 , 조선왕릉의 위엄과 웅장함을 잘 드러낸다.

  찾아가는길

 신들의 정원 다른 곳도 보세요

LIST
SMALL

조선 제21대 왕 영조(, 재위 1724~1776)의 맏아들로 사후 왕으로 추존된 진종( 1719~1728)과 부인 효순왕후 조씨의 무덤이다 3개의 조선왕릉(공릉·순릉·영릉)으로 이루어진 파주삼릉 (, 사적 제205)에 속해 있다.1728년(영조 4) 11월 16일 10살의 나이로 창경궁 진수당에서 세상을 떠난 효장세자의 무덤은 ‘효장묘’라 하였는데 1776년(정조 즉위) 왕(진종)으로 추존되면서 무덤도 영릉()이라는 능호를 받았다. 왕릉과 왕비릉이 나란히 놓인 쌍릉으로, 병풍석과 난간석은 설치되지 않았다. 각 봉분 앞에 상석 1좌씩 놓았고, 그 양측에 망주석 1쌍을 세웠으며, 봉분 주위에 석호()·석양() 각 2쌍을 교대로 배치하였다.봉분 아랫단에는 문인석,석마() 각 1쌍과 사각옥개형 장명석을 설치하였고, 무인석은 세우지 않았다. 능이 조성된 언덕 아래쪽에 정자각.비각.홍살문이 있다. 왕과 왕후로 추존되기 전 세자와 세자빈 무덤으로 조성되었을 때 설치한 모습 그대로이며, 추존 후에도 별도의 가설을 하지 않았다

찾아가는길

  신들의 정원 다른 곳도 보세요

LIST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