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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호 ! 너무 좋아서 눈물난다. 반년에 걸친 발품으로 마음에 쏘옥 드는 땅을 4월에 계약을 하고 오늘 법무사에서 마지막 잔금을 치르고 농막열쇠 비닐하우스 열쇠 창고 열쇠를 받아 얼른 택시를 타고 달려온 곳 아 ! 이게 내 땅이란 말이지....나의 로망은 훗날 정년퇴임후 고향땅을 구입하여 아담한 집을 짓고 내가 좋아하는 나무가꾸고 닭키우고 개키우고 가족과 이웃과 그리고 친구들과 나눠먹을 농작물을 가꾸는 것이었는데 드디어 첫단추를 끼웠다. 

집앞까지 차가 다닐 수 있는 3m 도로가 떡하니 있고 시골이라 비록 대문은 없지만 양쪽 우람한 소나무와 연산홍이 나를 반긴다.

조그만한 비닐하우스에는 전주인이 사용하던 농기구들이 있다.

비닐하우스 한 켠에는 대파와 상추가 심어져있다.이렇게 따뜻한 비닐하우스 안에 작물을 키우면 겨우내내 야채를 먹을 수 있다.

오늘은 하나하나 내땅에 있는 다양한 나무들과 집안 구석구석을 탐구해야 한다.저만치 간이 화장실 옆으로 쭈욱 연상홍이 도열하여 새주인을 환영해준다....그래 고맙다 앞으로 잘 살아보자꾸나 ~

전주인이 심어놓고간 완두콩과 감자다. 완두콩에 지주대를 마저 완성하지 못했나보다.

헉 이것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포도나무다 얼추봐도 10년은 넘은 듯한 포도나무다 그나저마 올봄에 가지치기도 해주고 퇴비도 주고 그랬어야 했는데...올해는 기대하지 말자 주면 먹고 안주면 내년을 기약하면 되니....

한창 물이 오르고 있는 과수원 밭에 엄청나게 많은 풀들이 자라고 있다. 제일먼저 제초를 해줘야 할 것 같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이곳에도 사과 배 유실수가 심어져 있었는데 전주인이 대추나무가 좋아서 대추나무를 심을려고 15년이상된 과실수 20여그루를 베어 버렸다고 한다....ㅠ ㅠ  아깝다...나는 나무들이 좋은데...근데 이 작은 1년생짜리 대추나무가 언제 크나

우리엄니가 좋아하는 매실나무다...아주 정신없이 가지마다 무진장 열렸다. 과일나무 즉 유실수는 아깝다 생각하지 말고 과감하게 따주고 솎아줘야 크게 자란다고 하는데 ...그래도 아깝다.

이 나무는 그 이름도 유명한 엄나무 음나무다.새순은 데쳐 쌈 싸먹고 줄기와 뿌리는 한약재로 쓴다는 특히 닭백숙을 할때 함께 끓이는 엄나무

도대체 이게 배나문지 사과나문지 아님 모과나문지...얼추 세어봐도 80-90그루는 될 것 같은데 하나하나 이름을 모르겠다.우선 과일이 영글어봐야 알겠다.

과수원 했던 곳이라 과수나무들이 모두가 위로 크지 않고 과실을 따기 편하게 옆으로 가지를 유인하여 키워 모두들 키가 작았다.

한창 포도나무 순이 올라오고 있다

여긴 완전 두릅나무 군락지다.....두릅을 진작에 따 살짝데쳐 초 고추장을 찍어 먹었어야 했는데....아쉽다.

이건 또 무슨 나무지 ? 인터넷 폭풍검색 한참만에 찾아냈다. 이것도 그 유명한 바로바로 오가피나무라는 거다. 오가피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얼쑤 좋다 ~

3 * 6짜리 콘테이너 농막이지만 전주인이 잘 가꾸고 깨끗하게 잘해서 넓직한 마루도 있어 친구들이 와도 고기 궈먹기 십상이다.

왠만한 살림살이는 다 있어서 쉬는 날이면 내려와 하룻밤 쉬고 밥도 해먹을 수 있을 정도로 시설이 완벽하다.....ㅋ

이 넓은 밭을 혼자서 하루만에 제초를 할 수 있을까...ㅠㅠ

두둑을 만들고 멀칭만 해놓고 아직 작물을 심지 않은 밭도 있었다. 다음주에 와서 고추라도 심어야 겠다.

마당에 풀도 푹푹 빠질정도로 수북하다

감격의 하루다. 내가 늙어 죽을때까지 자연과 함께 살 수 있는 내땅을 얻은 날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정말 멋진 날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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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락산은 충청북도 단양에 위치한 높이 965.3 m다.  충북단양은 영춘·청풍·제천과 함께 내사군으로 그중 으뜸으로 치는 청풍명월의 도를 즐기는[] 산이다. 우암 송시열은 '깨달음을 얻는 데는 나름대로 길이 있어야 하고 거기에는 또한 즐거움이 뒤따라야 한다'라는 뜻에서 산이름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소백산과 월악산 중간에 있는 바위산으로 일부가 월악산 국립공원 안에 들어 있다.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의 분기점에 있으며 주로 화강암과 편마암이 분포한다. 북에는 사인암이 서에는 상·중·하선암등 5개의 단양팔경을 안고 있어 경관이 빼어나며 궁터골에는 명소 사모폭포가 있다.

능선에는 신선봉·채운봉·검봉·형봉 등의 암봉이 성벽처럼 둘러 있다.상금교를 건너면 상선암이 있고 비탈진 능선을 거쳐 작고 큰 선바위를 만난다. 도락산에서 전망이 제일인 신선봉에는 거대한 암반에 노송들이 솟아 있고 눈 앞에는 월악산이 버티고 있다.황정산·수리봉·작성산·문수봉·용두산 등의 연봉이 보인다. 암릉·계곡·숲길의 풍치가 뛰어난 정상까지 암릉길 바위틈에 솟은 청송은 암벽과 함께 산수화처럼 펼쳐진다. 

출처:네이버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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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27대 왕 순종( 1874~1926)과 비 순명황후 민씨, 계비 순정황후 윤씨 세 사람을 합장한 무덤이다. 고종과 명성황후의 무덤인 홍릉()과 함께 1970526일 사적 제207호로 지정되었다.순명효황후는 순종이 즉위하기 전인 1904(광무 8) 115일 숨졌고, 이듬해 14일 양주 용마산 아래 언덕에 예장되었다. 1926425일 순종이 세상을 떠나 그해 611일 홍릉 왼쪽 산줄기 현 위치에 안장되면서 순명효황후를 이장하여 합장하였고, 1966년에는 순정효황후가 합장되었다.조선시대의 마지막 왕릉인 유릉()은 조선왕릉 중에서 하나의 봉분에 세 명을 합장한 유일한 동봉삼실릉()이다. 홍릉처럼 황체릉 양식으로 조성되어 있지만 홍릉에 비해 능역 규모가 약간 작은 편이다. 봉분을 감싼 병풍석과 난간석에는 꽃무늬가 새겨졌으며 혼유석 망주석·사각.장명등의 석물이 배치되어 있다. 대부분의 조선 왕릉에 설치된 석양()과 석호() 없다.능이 조성된 언덕 아래에는 정자각 대신 침전(殿)이 있고, 침전 앞 참도() 양쪽에 문인석·무인석과 기린·코끼리·사자·해태·낙타·말 등 동물 석상이 차례로 배치되었다. 침전 외에 비각.홍살문 수복방.재실 등의 부속건축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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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릉 [효종대왕]

조선 제17대 왕 효종( 1619~1659, 재위 1649∼1659)과 부인 인선왕후() 장씨(1618∼1674)의 무덤이다. 세종과 소헌왕후 심씨의 무덤인 영릉()과 함께 1970년 5월 26일 사적 제195호로 지정되었다.왕릉과 왕비릉을 좌우로 나란히 배치한 것이 아니라 아래위로 배치한 쌍릉 형식이다. 풍수지리에 의한 이런 쌍릉 형식은 조선왕릉 중 최초의 형태인데 경종과 선의왕후의 무덤인 의릉()도 이런 형태를 띠고 있다.처음엔 구리시 인창동 동구릉 ()의 태조 무덤인 건원릉() 서쪽에 있었으나 석물에 틈이 생겨 봉분 안으로 빗물이 샐 염려가 있다 하여 1673년(현종 14) 세종의 무덤인 영릉() 동쪽으로 능을 옮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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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19대 왕 숙종( 재위 1674~1720)의 원비인 인경왕후()김씨(1661~1680) 무덤이다. 5개의 조선왕릉(경릉·창릉·명릉·익릉·홍릉)으로 이루어진 서오릉(西, 사적 제198호)에 속해 있다.인경왕후는 1680년(숙종6)10월 26일 경희궁 회상전에서 숨을 거두고,1681년 2월 22일 안장되었다.숙종이 왕릉의 능제를 단순화하고 석물을 간소하게 제작하라고 명하기 전에 조성된 능으로, 기본적으로는 국조오례의 제도를 따르고 부분적으로는 임진왜란 이후의 양식을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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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릉은 조선 6대 단종의 부인인 정순왕후(1440∼1521)의 무덤이다.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준 뒤 그에 의해 죽임을 당하자 왕후는 왕실을 떠나 작은 집을 지어 평생 흰옷만 입으며 고기와 생선은 먹지 않았다고 한다. 왕후가 후사(後嗣) 없이 승하(昇遐)함에 부왕(夫王) 단종(端宗)의 누이 경혜공주(敬惠公主)의 시가(媤家)인 정씨가(鄭氏家)의 묘역에 장례하였으며, 봉사(奉祀)도 정씨가에서 하여왔다. 숙종 24년(1698)에 단종이 왕으로 복위 되면서 정순왕후라 봉해졌고 왕후의 무덤을 사릉이라 했다. 무덤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을 하지 않았고, 무덤 앞에 상석과 양석, 둘레돌이 있으며 그 밖으로 3면을 낮은 담으로 쌓았다. 단종의 무덤이 장릉으로 봉해졌을 때에도 병풍석과 난간석을 세우지 않고, 동물모양의 돌만 세웠는데 이는 왕릉으로 봉해진 것에 대한 예에 따른 것이다. 사각지붕 모양의 명등석은 장릉과 같은 것으로 숙종대의 양식이 잘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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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릉(莊陵) 

사진매니아들이 가는 곳 사진찍기 정말 좋은 곳이다.데이트 하기 좋은곳이다 에휴 말을 해서 뭐하나  일단 가보면 알 것이다울창한 숲 조용한 길 잘 가꿔진 정원 그리고 소나무 사진으로 유명한 배병우 사진작가가 이곳서 찍었을 환상적인 소나무들까지 4계절 언제라도 가보면 매혹될 곳 우리의 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이다. 

 
조선 6대 단종(재위1452∼1455) 무덤이다
단종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긴 뒤, 충신들이 그를 다시 왕으로 복위시키려는 계획이 밝혀져 영월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단종이 죽자 후환이 두려워 시신을 거두는 사람이 없었는데 영월호장 엄흥도가 장사를 지냈다. 중종 이후 조정에서 단종에 대한 제사와 무덤에 대한 의견이 나오게 되어, 선조 때에 상석·표석·장명등·망주석을 세웠다.

숙종 7년(1681)에 노산군을 노산대군으로 하였고, 숙종 24년(1698)에 복위시켜 이름을 장릉이라 하였다. 오랫동안 묘의 위치조차 알 수 없다가 1541년(중종 36) 당시 영월군수 박충원이 묘를 찾아내어 묘역을 정비하였고, 1580년(선조 13) 상석·표석·장명등·망주석 등을 세웠다

1681년(숙종 7) 단종은 노산대군(魯山大君)으로 추봉되고, 1698년(숙종 24) 11월 단종으로 추복되었으며, 능호는 장릉(莊陵)으로 정해졌다.장릉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을 세우지 않았으며, 석물 또한 단출하다. 봉분 앞에 상석이 있고, 상석 좌우에 망주석 1쌍이 서 있으며, 그 아랫단에 사각형 장명등과 문인석·석마(石馬) 각 1쌍이 있으나 무인석은 없다. 묘가 조성된 언덕 아래쪽에는 단종을 위해 순절한 충신을 비롯한 264인의 위패를 모신 배식단사(配食壇祠),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엄흥도의 정려비, 묘를 찾아낸 박충원의 행적을 새긴 낙촌기적비, 정자각·홍살문·재실·정자(배견정 拜鵑亭) 등이 있다.

왕릉에 사당·정려비·기적비·정자 등이 있는 곳은 장릉뿐인데 이는 모두 왕위를 빼앗기고 죽음을 맞은 단종과 관련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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