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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6월 30일 동아일보 독자수필에 실렸던 글입니다

 

복 권 ( 福 券 )

 

철에서 내려 바쁘게 움직이는 많은 사람들 틈을 헤치고 판매소에서 복권 한 장을 사 안주머니에 조심스레 넣는다. 나 같은 샐러리맨이면 누구나 몇 번쯤 복권을 사 봤으리라. 온통 풍만감으로 가득찬 마음이다. 일 주일을 간절하게 기다리다 조금은 떨리는 맘으로 신문을  집어들고 맞추지만 잘해야 한 장으로 교환할 수 있는 6등이 고작이다. 그러나 추첨발표가 나오는 월요일을 기다리는 마음은 복권을 구입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간혹 간밤에 돼지 꿈도 불꿈도 아닌 이상한 꿈을 꾸고도 애써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며 몇 장의 복권을 사 든든한 맘으로 또 일 주일을 기다린다. 이번에 당첨만 되면 제일 먼저 삼분의 일 정도는 불우이웃 돕기에 내놓고 얼마는 부모님 공양하는데 쓰며 그래도 남으면 아이와 고생하는 아내를 위해 써야지 하며 무슨 재벌이나 된 듯이 이런저런 계획도 세운다. 내욕심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며 백 만분지 일의 확률이라는 하늘에서 내릴법한 꿈도 꾸지만 어김없이 실패의 연속이다. 

때론 허망한 꿈꾸는 나같은 샐러리맨이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단돈 오 백원으로 일 주일 동안의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 현명한 생활의 한 방법이며 요즘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많은 부패와 비리들처럼 불성실하게 부를 축적하는 것과는 비교하지 못할 정당한 방법은 아닐런지...결코 그건 뭇 사람들이 생각하 듯 사행심이 아닐 것이고 요행을 바라는 어리석사람도 아닐 것이다. 

오 백원짜리 복권 한 장으로 마음만큼은 재벌 못지 않은 부자로 살며 무주택자를 위한 기금 마련에 동참하고 있으니

이것 또한 나라에 애국한다는 멋드러진 합리화가 아닌가.

당첨이 되든 안 되든 일 주일 동안을 작은 기대감과 큰 풍족감으로 살 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 일 주일을 알차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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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릉은 단릉으로 조성된태조의 계비 신덕왕후의 능이다. 처음에는 현재 영국대사관 자리에 능역이 조영되었으나, 태조가 승하한 후, 원비의 태생인 태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신덕왕후는 평민으로 강등되고, 현재의 위치로 천장되었다. 따라서 왕릉제인 병풍석이나 난간석은 봉분에서 사라지고, 4각 장명등, 고석, 상석 등만이 원래의 것으로 추정된다. 그 중 장명등은 고려시대 공민왕릉의 양식을 따른 것으로 조선시대 능역의 가장 오래된 석물인 동시에 예술적 가치가 높다.정릉의 공간은 일반 왕릉의 영역이 직선축을 이루는 데 비해, 자연 지형에 맞추어 절선축으로 조성되어 있다. 능역 입구 금천교의 모습은 우리나라 자연형 석교의 조형기술을 볼 수 있으며 재실터 양 옆으로 서 있는 느티나무의 보호수도 살펴 볼만한 가치 있는 역사경관이다

역사탐방

극진히 사랑했던 현비가 갑자기 승하하자 태조는 도성 안인 현 덕수궁 뒤편 현재 영국대사관 자리로 추정되는 곳에 능역을 조성하고 강씨 봉분 우측에 훗날 자신이 묻힐 자리까지 함께 마련하여 능호를 정릉으로 정하였다. 아울러 능의 동편에 흥천사(興天寺)라는 절을 지어 재궁으로 삼고 능침사찰로 하였다.그러나 잘 조성된 정릉은 신덕왕후의  왕자인  방번과 방석이 왕자의 난을 거치면서 살해되고  태조의 원비 신의왕후의  다섯 번째 소생인 태종이 즉위하면서부터 푸대접을 받았다. 태종은 정릉의 능역 100보 근처까지 주택지로 정하여 세도가들이 정릉 숲의 나무를 베어 저택을 짓는 것을 허락하고,청계천 광통교(현재의 광교)가 홍수에 무너지자 능의 석물 중 병풍석을 광통교 복구에 사용하였으며, 그 밖에 목재나  석재들은  태평관을 짓는 데 쓰게 하도록 하였다.  정릉이 있던 이 일대는 지금까지 정동(貞洞)으로 불리고 있다. 그로부터 260여년이 지난 1669년(현종 10) 신덕왕후는 현종에 의해 복권되면서 그 능이 현재와 같이 재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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