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ALL

 

사릉은 조선 6대 단종의 부인인 정순왕후(1440∼1521)의 무덤이다.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준 뒤 그에 의해 죽임을 당하자 왕후는 왕실을 떠나 작은 집을 지어 평생 흰옷만 입으며 고기와 생선은 먹지 않았다고 한다. 왕후가 후사(後嗣) 없이 승하(昇遐)함에 부왕(夫王) 단종(端宗)의 누이 경혜공주(敬惠公主)의 시가(媤家)인 정씨가(鄭氏家)의 묘역에 장례하였으며, 봉사(奉祀)도 정씨가에서 하여왔다. 숙종 24년(1698)에 단종이 왕으로 복위 되면서 정순왕후라 봉해졌고 왕후의 무덤을 사릉이라 했다. 무덤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을 하지 않았고, 무덤 앞에 상석과 양석, 둘레돌이 있으며 그 밖으로 3면을 낮은 담으로 쌓았다. 단종의 무덤이 장릉으로 봉해졌을 때에도 병풍석과 난간석을 세우지 않고, 동물모양의 돌만 세웠는데 이는 왕릉으로 봉해진 것에 대한 예에 따른 것이다. 사각지붕 모양의 명등석은 장릉과 같은 것으로 숙종대의 양식이 잘 나타나 있다.

 찾아가는길 

공 감 . 댓 글 . 구 독  !!  꾸벅 !!

 신들의 정원 다른 곳도 보세요

LIST
SMALL

현릉

조선 제5대 왕 문종( 1414~1452 재위 1450∼1452) 문종의 부인이자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 1418~1441)의 무덤이다. 9개의 조선왕릉(건원릉.현릉·목릉·휘릉·숭릉·혜릉·원릉·수릉·경릉)으로 이루어진 동구릉(, 사적 제193호) 경내에 있다.<국조오례>의 본이 된 영릉(, 세종과 소헌왕후의 능)의 형식을 따른 능으로, 왕과 왕비의 능을 서로 다른 언덕 위에 따로 만든 동원이강릉()이다.정자각에서 능을 바라보았을 때 왼쪽 언덕의 능이 문종, 오른쪽 언덕의 능이 현덕왕후의 능으로 홍살문을 비롯하여 정자각·비각 등을 하나씩만 만들었다.
병풍석에는 이전 왕릉에 있던 방울·방패 무늬가 사라졌고 구름 무늬가 도드라지게 표현되었다. 상석을 받치는 고석()도 5개에서 4개로 줄었다. 묘역 가장 아랫단에는 머리·눈·코가 큼직하고, 장검을 두 손으로 짚고 선 무인석이 있고, 튀어나온 눈과 콧수염 등이 이국적인 문인석이 있다. 문종 이전 왕들의 능에는 신도비가 세워졌으나 문종 때부터는 신도비가 건립되지 않았다.현덕왕후는 단종을 낳고 병을 얻어 1441년(세종 23) 문종보다 11년 먼저 세상을 떠났고, 안산의 소릉에 묻혔다. 단종 복위사건에 의해 1457년(세조 3) 추폐되었다가 1512년(중종 7) 복위되어 다음해 봄 문종이 묻혀 있는 현릉으로 이장되었다.

찾아가는길

공 감 . 댓 글 . 구 독  !!  꾸벅 !!

 신들의 정원 다른 곳도 보세요

LIST
SMALL
장릉(莊陵) 

사진매니아들이 가는 곳 사진찍기 정말 좋은 곳이다.데이트 하기 좋은곳이다 에휴 말을 해서 뭐하나  일단 가보면 알 것이다울창한 숲 조용한 길 잘 가꿔진 정원 그리고 소나무 사진으로 유명한 배병우 사진작가가 이곳서 찍었을 환상적인 소나무들까지 4계절 언제라도 가보면 매혹될 곳 우리의 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이다. 

 
조선 6대 단종(재위1452∼1455) 무덤이다
단종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긴 뒤, 충신들이 그를 다시 왕으로 복위시키려는 계획이 밝혀져 영월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단종이 죽자 후환이 두려워 시신을 거두는 사람이 없었는데 영월호장 엄흥도가 장사를 지냈다. 중종 이후 조정에서 단종에 대한 제사와 무덤에 대한 의견이 나오게 되어, 선조 때에 상석·표석·장명등·망주석을 세웠다.

숙종 7년(1681)에 노산군을 노산대군으로 하였고, 숙종 24년(1698)에 복위시켜 이름을 장릉이라 하였다. 오랫동안 묘의 위치조차 알 수 없다가 1541년(중종 36) 당시 영월군수 박충원이 묘를 찾아내어 묘역을 정비하였고, 1580년(선조 13) 상석·표석·장명등·망주석 등을 세웠다

1681년(숙종 7) 단종은 노산대군(魯山大君)으로 추봉되고, 1698년(숙종 24) 11월 단종으로 추복되었으며, 능호는 장릉(莊陵)으로 정해졌다.장릉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을 세우지 않았으며, 석물 또한 단출하다. 봉분 앞에 상석이 있고, 상석 좌우에 망주석 1쌍이 서 있으며, 그 아랫단에 사각형 장명등과 문인석·석마(石馬) 각 1쌍이 있으나 무인석은 없다. 묘가 조성된 언덕 아래쪽에는 단종을 위해 순절한 충신을 비롯한 264인의 위패를 모신 배식단사(配食壇祠),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엄흥도의 정려비, 묘를 찾아낸 박충원의 행적을 새긴 낙촌기적비, 정자각·홍살문·재실·정자(배견정 拜鵑亭) 등이 있다.

왕릉에 사당·정려비·기적비·정자 등이 있는 곳은 장릉뿐인데 이는 모두 왕위를 빼앗기고 죽음을 맞은 단종과 관련된 것들이다.

공 감 . 댓 글 . 구 독  !!  꾸벅 !!

 신들의 정원 다른 곳도 보세요

LIST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