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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제20대 왕 경종(1721∼1724)의 원비 단의왕후()심씨(1686~1718)의 무덤이다.9개의 조선왕릉(건원릉.현릉·목릉·휘릉·숭릉·혜릉·원릉·수릉·경릉)으로 이루어진 동구릉(, 사적 제193호) 중 하나로, 동구릉 서쪽 능선의 숭릉(; 현종의 능)과 경릉(; 헌종의 능) 사이에 있다.단의왕후는 1718년(숙종 44) 2월 7일 창덕궁 장춘헌에서 세자빈의 신분으로 세상을 떠났고,1720년(경종 1) 왕비로 추존되었다. 혜릉은 능역이 전반적으로 좁고, 석물의 크기 또한 다른 왕릉의 것보다 작은데 단의왕후가 죽을 때 세자빈의 신분이었기 때문에 능도 단출하게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봉분을 에워싸고 12칸의 난간석이 둘러져 있으며, 병풍석은 설치되지 않았다. 봉분 주위에 혼유석과 세호()가 새겨진 망주석 1쌍, 석양()·석호() 각 2쌍이 배치되어 있다. 봉분 아랫단에는 높이 173cm의 문인석과 석마() 각 1쌍이 있으며 장명등은 남아 있지 않다. 그 아랫단에는 높이 183cm의 무인석과 석마 각 1쌍이 배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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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21대 왕 영조( 1694~1776, 재위 1724~1776)와 그의 계비 정순왕후 김씨(1745~1805)의 무덤이다. 9개의 조선왕릉(건원릉.현릉·목릉·휘릉·숭릉·혜릉·원릉·수릉·경릉)으로 이루어진 동구릉(, 사적 제193호) 중 하나로, 태조의 무덤인 건원릉 서쪽 두 번째 산줄기에 있다.
영조는 원비인 정성왕후가 잠든 서오릉의 홍릉() 자리에 묻히기를 바랐으나 정조가 현 위치에 능지를 정하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원릉이 있는 자리는 원래 효종의 능인 영릉()이 있었던 곳으로, 영릉은 1673년(현종 14) 경기도 여주로 옮겨졌다. 영조는 1776년 3월 숨을 거두고,같은해 7월 27일 능에 안장되었으며 정순왕후는 원릉을 조성한 지 29년 후 1805년(순조5) 6월 20일 영조 옆에 안장되었다.
왕릉과 왕비릉이 나란히 놓인 쌍릉으로, 난간석이 두 왕릉을 에워싸고 있다. 봉분을 감싸는 병풍석은 설치되지 않았으며, 각 봉분 앞에 혼유석이 1좌씩 놓여 있고, 혼유석 좌우로 받침에 꽃문양을 새긴 망주석 1쌍이 있다. 그밖에 석양()·석호() 각 2쌍 문인석·석마() 각 1쌍, 장명등 1좌, 무인석·석마 각 1쌍 등의 석물이 배치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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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18대 왕 현종( 1641~1674, 재위 1659∼1674)과 그의 비 명성왕후() 김씨(1642~1683)의 무덤이다.
현종은 1674년(숙종 즉위년) 8월 18일 34세의 나이로 창덕궁 대조전 양심각에서 숨을 거뒀다. 팔도의 승군 2,650명을 징발하여 능을 조성하였고, 12월 13일 조선 태조의 무덤인 건원릉() 남서쪽 산줄기에 예장하였다. 명성왕후는 1683년(숙종 9) 12월 5일 창경궁 저승전 서별당에서 세상을 떠나 현종 옆에 묻혔다.하나의 곡장(; 나지막한 담) 안에 왕릉과 왕비릉을 나란히 조성한 쌍릉으로, 난간석이 두 능을 감싸고 있다.병풍석은 없으며, 석양()·석호() 각 2쌍 망주석 1쌍 장명등 1개 문인석 석마() 각 1쌍, 무인석·석마 각 1쌍의 석물을 갖추었다.장명등과 망주석에는 인조 무덤인 장릉()의 석물에서처럼 꽃무늬가 새겨져 있으며,망주석 위쪽에 세호라고 불리는 작은 동물조각이 뚜렷하게 조각되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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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릉

조선 제5대 왕 문종( 1414~1452 재위 1450∼1452) 문종의 부인이자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 1418~1441)의 무덤이다. 9개의 조선왕릉(건원릉.현릉·목릉·휘릉·숭릉·혜릉·원릉·수릉·경릉)으로 이루어진 동구릉(, 사적 제193호) 경내에 있다.<국조오례>의 본이 된 영릉(, 세종과 소헌왕후의 능)의 형식을 따른 능으로, 왕과 왕비의 능을 서로 다른 언덕 위에 따로 만든 동원이강릉()이다.정자각에서 능을 바라보았을 때 왼쪽 언덕의 능이 문종, 오른쪽 언덕의 능이 현덕왕후의 능으로 홍살문을 비롯하여 정자각·비각 등을 하나씩만 만들었다.
병풍석에는 이전 왕릉에 있던 방울·방패 무늬가 사라졌고 구름 무늬가 도드라지게 표현되었다. 상석을 받치는 고석()도 5개에서 4개로 줄었다. 묘역 가장 아랫단에는 머리·눈·코가 큼직하고, 장검을 두 손으로 짚고 선 무인석이 있고, 튀어나온 눈과 콧수염 등이 이국적인 문인석이 있다. 문종 이전 왕들의 능에는 신도비가 세워졌으나 문종 때부터는 신도비가 건립되지 않았다.현덕왕후는 단종을 낳고 병을 얻어 1441년(세종 23) 문종보다 11년 먼저 세상을 떠났고, 안산의 소릉에 묻혔다. 단종 복위사건에 의해 1457년(세조 3) 추폐되었다가 1512년(중종 7) 복위되어 다음해 봄 문종이 묻혀 있는 현릉으로 이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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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순조 (,재위 1800~1834)의 원자로 왕세자(효명세자)로 책봉되고,사후에 왕으로 추존된 익종(1809~1830)과 부인 신정왕후() 조씨(1808~1890)를 합장한 무덤이다.효명세자는1830년(순조30) 5월6일 창덕궁 희정당에서 숨을 거두었고,같은 해 8월 4일 서울 석관동에 있는 경종 무덤인 의릉() 좌측에 무덤을 만들어 연경묘()라 하였다. 1835년(헌종 즉위) 5월 19일 효명세자가 왕(익종)으로 추존되면서 연경묘는 수릉()이라는 능호를 받았다.그 후 풍수상의 문제로 2번에 걸쳐 능을 옮겨 1855년(철종 6) 현재의 위치인 동구릉(, 사적193호)의 태조 무덤 건원릉 좌측에 자리 잡았다. 신정왕후는 1890년(고종 27) 4월 17일 경복궁 흥복전에서 숨져 같은 해 8월 30일 익종과 합장되었다.
조선 왕릉은 일반적로 3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수릉은 2단으로 되어 있다. 봉분이 있는 윗단에는 봉분을 둘러싼 12칸의 난간석과 혼유석 1좌, 석양()·석호() 각 2쌍 망주석 1쌍이 있으며 3면의 나지막한 담으로 둘러싸여 있다. 아랫단에는 무인석·석마() 각 1쌍, 문인석·석마 각 1쌍이 배치되어 있다. 문인석은 길쭉한 얼굴에 눈과 입술이 가늘게 표현되고, 어깨를 움츠리고 목을 앞으로 빼고 있는 형태로 조선 후기 인물 조각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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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14대 왕 선조( 1552~1608, 재위 1567∼1608)와 원비 의인왕후() 박씨(1555~1600), 계비 인목왕후() 김씨(1584~1632) 세 사람의 무덤이다. 9개의 조선왕릉(건원릉.현릉·목릉·휘릉·숭릉·혜릉·원릉·수릉·경릉)으로 이루어진 동구릉(, 사적 제193호)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같은 능역 안의 각각 다른 언덕에 왕릉과 왕비릉을 조성한 동원이강릉() 형식으로, 왼쪽에 선조, 가운데에 의인왕후, 오른쪽에 인목왕후의 능이 있다.선조의 능에는 3면의 곡장(; 나지막한 담)이 둘러져 있고, 봉분 아랫부분은 12지신상과 구름 문양이 조각된 병풍석으로 감싸여 있다. 봉분 바깥쪽으로 난간석을 비롯하여 혼유석,망주석 1쌍 장명등, 석양()·석호() 각 2쌍 문인석·무인석 각 1쌍, 석마() 2쌍 등의 석물이 배치되어 있다.의인왕후릉과 인목왕후릉은 비슷한 형식으로, 병풍석이 생략된 채 난간석과 혼유석·망주석·장명등 등의 석물이 있다.목릉의 능역은 원래 의인왕후 박씨의 왕비릉인 유릉()이었다. 목릉은 1608년(광해군 즉위년) 태조의 능인 건원릉 서쪽에 조성되었는데 터가 좋지 않고 물이 찬다 하여 1630년(인조 8) 유릉 자리 즉 현 위치로 옮겼고, 이때 유릉과 목릉의 능호를 합칭하여 목릉이라 불렀다. 1632년 인목대비의 능을 조성하여 세 개의 능을 이루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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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산4-2번지 동구릉 안에 있는 조선 제1대 왕 태조의 무덤이다.

9개의 조선왕릉(건원릉·현릉·목릉·휘릉·숭릉·혜릉·원릉·수릉·경릉)으로 이루어진 동구릉(, 사적 제193호) 경내에 있다. 전체적으로 고려 공민왕의 능인 공민왕릉(현릉)을 본떠 만들었으나 고려시대 왕릉엔 없는 곡장(; 나지막한 담)이 봉분 주위를 두르고 있고, 석물들은 남송 말기 중국풍을 따르고 있다.

봉분에는 다른 왕릉처럼 잔디를 심지 않고 억새풀을 심었는데  고향을 그리워했던 아버지를 위해 태종이 태조의 고향에서 흙과 억새를 가져다 덮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12지신상을 새긴 12면의 화강암 병풍석이 봉분을 감싸고, 봉분 밖으로는 12칸의 난간석이 둘러져 있다.태조는 1408년(태종 8) 5월 24일 창덕궁 광연루 별전에서 숨을 거뒀다.영의정 하륜() 등이 산릉지()를 물색하다가 그해 6월 28일 현 위치로 결정하였고, 7월 5일 충청도·황해도·강원도에서 군정() 약 6,000명을 징발하여 7월 말부터 역사()를 시작하고 석실을 만들었다.   9월 7일  태종이  백관을 거느리고  빈전에 나가 견전례를 행하고 발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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