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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한려수도의 절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통영 미륵산 케이블카를 탔다.

한려해상국립공원은 경상남도 사천시,거제시,통영시,하동군, 남해군 및 전라남도 여수시에 걸쳐 있다. 전체면적중 해상면적이 76%를 차지하며, 해양과 도서, 육지가 빚어내는 아기자기한 지형경관이 뛰어나 관광객이 즐겨찾고 있다.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전적지가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통영 미륵산에 설치된 통영케이블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케이블카다. 그 길이가 1975m로 국내 일반관광객용 케이블카 중에서는 가장 길다고 한다. 특히 그렇게 긴 길이에도 불구하고 친환경적인 설계에 의해 중간지주는 1개만 설치하여 환경보호는 물론 탑승객에게 아주 편안한 승차감을 제공한다. 또한, 8인승 곤돌라 48대가 연속적으로 탑승객을 운송함으로써 지체 없이 탑승이 가능하여 아름다운 한려수도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출처 네이버지식백과

그러나 미륵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국립해상공원 한려수도와 통영시내는 한마디로 장관이었다. 단언하건데 풍광으로는 최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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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해금강

경상남도 거제도 남동쪽 갈곶 부근의 바다이다.1971년 우리나라 명승 제2호로 지정되었으며 보통 북한 금강산의 해금강과 구분을 하기 위해 거제 해금강이라고 부른다. 갈곶리 해금강 마을 남쪽 약 500m 해상에 있다. 두 개의 큰 섬이 맞닿은 해금강은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속한다. 주위의 경관으로는 썰물 때 그 신비로운 모습을 드러내는 십자동굴, 사자바위, 환상적인 일출과 월출로 유명한 일월봉 등이 있다

외도 보타니아

경상남도 거제시 일운면 와현리에 딸린 섬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속하며 거제도에서 4km 떨어진 곳에 있는 개인 소유 섬이다. 조선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고 하며 해안선 길이 2.3km로 해발 80m의 기암절벽에 둘러싸여 있다. 원래는 전기나 전화가 들어가지 않는 외딴 바위섬이었으나 개인이 사들여 농원으로 개발한 뒤 관광농원으로 허가받고 개간하여 1995년 해상식물공원인 외도해상농원을 개장하였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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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언덕

경상남도 거제 해금강 가는 길 왼쪽으로 내려가면 도장포 마을이 나오고, 그 마을 북쪽에 자리 잡은 곳이 바로 바람의 언덕이다.
원래의 지명은띠밭늘로 불렸으나 2002년부터 바람의 언덕으로 바뀌어 불리고 있다.언덕에서 바다를 바라보면 한 없이 넓고 고즈넉하며 시원한 바람이 상쾌함을 선사한다.
여기서 보이는 것들은 하나같이 지루하지 않은 한가함을 입었다.섬도, 등대도, 유람선도, 바람마저도 한가해 보인다.
짊어진 마음의 짐을 바다에 던지거나 바람에 날려 보내기에 최적의 장소이다.
영국에 황량한 폭풍의 언덕이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넉넉한 바람의 언덕이 있다.

신선대

바람의 언덕 맞은 편 해안에 위치하고, 신선이 내려와서 풍류를 즐겼다고 할만큼 자연경관이 빼어난 곳으로 주변의 해안경관과 기암괴석에 부딪히는 하얀 파도가 멋진 곳이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면, 수평선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빛깔의 바다와 형형색색의 바위가 어우러진 다도해 풍경이 정말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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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등대 쿠크다스 섬으로 유명한 소매물도는 통영항에서 약 26㎞정도 떨어져 있으며 작은 섬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통영시 한산면 매죽리에 속한다. 경남 통영에서 배로 약 1시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거제도 저구항으로부터는 배로 약 30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가깝다. 북쪽 해상 일대는 한려해상 국립공원에 해당한다.
소매물도 해안에는 수직의 해안절벽을 따라 다양한 암석경관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그중에서도 파도의 침식작용으로 형성된 해식애(해안절벽), 해식동굴 등이 곳곳에 발달하여 해안지형 경관이 절경을 이루고 있어 통영 8경중 하나다.
소매물도 남단의 등대섬은 2007년 문화관광부에서 '가고 싶은 섬'으로 선정되었다. 또한 최근 문화재청에서는 자연명승으로 등대섬을 지정하여 지형 경관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섬 소매물도를 가고 싶어 한다.


하얀등대섬 일명 쿠크다스 섬으로 유명한 소매물도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비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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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가 있는 합천의 가야산 말고 충청남도 덕산에 있는 가야산이다. 충남 덕산의 가야산은 덕숭산과 더불어 덕산도립공원으로 편입되었다
가야산은 오서산, 계룡산과 더불어 충청남도 지역 명산이면서 충청남도 사람들의 생활터전이자 문화 창조의 원천이었다 한다. 특히 가야산은 주변의 구릉지 및 평지와 그 밖의 해안과 만입의 포구와 더불어 내포 지역의 지리적 전형성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인자이다.가야산은 전체적으로 행정구역의 측면에서는 예산군 서부의 덕산면과 서산시 동부의 운산면·해미면에 걸쳐 있는 산이며 세부적으로 보면 태안반도에 남북 방향으로 발달해 있는 가야산맥의 아래에 있다.
가야산은 남북 방향으로 뻗어 있는 가야산맥의 주봉이다. 가야산에는 주봉인 가야봉을 중심으로 원효봉,석문봉,옥양봉,일락산, 수정봉, 상왕산등의 봉우리가 연결되어 있다.특히 석문봉은 가야산 봉우리 중 바위가 많은 곳으로 유명하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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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묘

서삼릉에는 참으로 볼 것이 많다. 효릉뿐 아니고 회묘. 태실. 소경원. 왕자. 공주묘. 후궁묘까지 일반인들이 잘모르는 비공개지역이 많다. 그중 회묘는 성종의 첫번째 계비지만 조선 최초로 후궁 출신 왕후가 된 여인이며 시기와 질투로 인하여 인수대비와 후궁들에게 미움을 사 결국 사약까지 받게된 인물이다.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40기중 하나는 아니지만 회묘 역시 쉽게 볼 수 없는 비공개지역이므로 소개합니다   

고양시 덕양구 원신동의 서삼릉 경내에 있는 연산군의 생모 폐비 윤씨의 묘.1969년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대학의료원 자리에 있던 것을 지금의 자리로 이장한 것이다. 연산군이 즉위하면서 회릉으로 추숭하였으나, 1506년 중종반정으로 회묘로 강봉되고 신주는 묘 곁에 묻혔으며, 석물은 봉분과 함께 남아 있다가 서삼릉 내의 귀인()숙의() 묘역으로 이장되었다  

기구한 삶을 살다간 폐비윤씨. 성종의 첫번째 계비지만 조선 최초로 후궁 출신 왕후가 된 여인이다.  [출처] 네이버 폐비윤씨의 수난 

일단 그녀의 나이 또한 유명한데 정확히 알려지진 않았으나 주변인물들로 유추해보면 성종보다 무려 12살이나 연상이다 .성종은 조선 역사상 최고로 많은 비와 많은 후궁을 둔 왕이다. 정치는 잘했으나 여색을 밝히는 왕이었으니 나이 많은 윤씨의 눈엔 질투심이 없다 하더라도 여자의 입장 그것도 중전의 입장에선 못마땅했을 것이다.윤씨는 미천한 가문에서 태어났다 

무명을 짜서 직접 시장에 내다 팔아 어머니를 봉양할 정도로 가난한 사대부집이었다고 한다.그런 출신이 공신들이 판치던 세상에 원자를 회임했다고 낙하산급 인사가 단행됐으니 가만 있을 후궁들이 아니었다. 후궁들의 왕따 작전이 시작된다.내훈이란 책까지 편찬한 유교적 사상에 꽂혀 있는 인수대비가 시어머니다. 성종 역시 인수대비의 엄격함에 기를 못 펴고 살았다고 하는데 내명부의 수장으로서 윤씨가 걸어야 할 길이 결코 녹록치 않았음을 말해준다.

그러므로 미천한 가문 출신의 윤씨를 인수대비는 가례 전부터 반대했었으니 고부간의 갈등은 이미 예정된 일이었고 가문이 볼품없단 이유로 중전 자리에 대 놓고 도전하는 후궁들이 많았다.가장 중요한 건 윤씨의 투기인데 투기가 진짜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많은 기록에서 투기와 질투를 보였다는 기록이 있다 .

그래서 중전에 앉은지 얼마안되어 후궁들의 모함이 본격 시작된다. 당시 품계로 그 유명한 엄숙의 정숙의가 중전의 투기를 이유로 대비전과 주상에게 계속 모함을 했고 심지어 곶감에 비상을 탔다는 등의 중상모략이 끊이질 않았다.  내명부의 훈계로 엄한 인수대비가 교태전에 직접 찾아가 투기와 예의가 없다는 이유로 회초리를 들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당시 중전이었던 윤씨는 안팎으로 모진 수모를 당했다 .

기묘록에는 성종이 내시를 시켜 윤씨를 감시하게 했는데 대비가 이를 알고 내시에게 사주해 사실을 조작해 보고하게 끔 시켰다고 한다. 야사에 따르면 윤씨가 성종의 용안에 손톱자국을 냈다고 하는데 성종실록엔 윤씨가 오히려 후궁방에 뛰어 들어 성종에게 뺨을 맞았다는 기록이 있다. 어찌됐건 두 기록 모두 윤씨의 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성종의 품에서 멀어져 갔고 이미 성종의 눈 밖에 난 것은 물론 당시 삼전(정희왕후, 인수대비, 안순왕후)도 윤씨를 탐탁치 않게 여겼고 조정을 주름잡는 공신들의 눈밖에도 난 상태였다.그러기에 끝내 윤씨를 중전의 자리에서 폐위 하기에 이른다.

폐위후 폐비 윤씨는 사가에서 힘들게 살며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진심으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를 염탐하던 조정에서도 원자의 생모인 만큼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는 공론이 제기됐으나 다시 한 번 인수대비와 후궁들이 공모해 성종에게 허위 사실을 유포하여 복위는 커녕 그녀를 사사하기에 이른다 .사사 전 원자(연산군)를 의식해 대비전은 주저했으나 아들이 왕위 되기 전 후환을 없애야 한다며 삼전합의를 이끌어 낸 한명회 정창손 등이 가세해 성종을 압박했고 성종 역시 직접 나서  폐비 문제에 종지부를 찍는다 . 성종 재위 10년 윤씨를 서인으로 폐하고 것도 모자라 좌승지 이세좌에게 사약을 내려 마을주민이 지켜보는 앞에서 그녀를 사사한다.

기묘록에 따르면 윤씨는 피눈물을 닦아 피로 얼룩진 수건을 어머니 신씨에게 전하면서 내 아이가 보위에 오르거든 나의 슬프고 원통한 사연을 알려 주오.거동하는 길 옆에 장사하여 임금의 행차를 보게 해주시오. 라고 지금의 건원릉 옆에 안장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그렇게 폐비 윤씨는 사사되었고 그녀의 묘 또한 천장과 이장을 반복하다 끝내 이자리에 모셔졌다 .연산군 일기 1496년 3월 13일자엔 무덤을 발견한 연산은 묘가 허물어지고 구멍이 뚫려 여우와 살쾡이들이 시신을 먹어치웠을 것 같구나, 어찌 이리 무심할 수 있는가' 라고 애석함과 분통을 토로한 기록이 있는데 당시 묘의 관리가 전혀 이루어지고 있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회묘를 천장할 때 지관은 없었나 보다..... 단지 마땅히 이장할 자리가 없어 후궁묘역 좌측에 자리잡은 것으로 보인다.  

능침공간은 그럴듯 하게 조성되었지만 무엇보다 날씨가 흐려서인지 볕도 잘 들어오지 않아  매우 음산한 기운이 감돌아 음기가 강하다. 생전에도 편한 삶을 살지 못했고 천수도 누리지 못하고 사사된 것도 모자라 죽어서도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우여곡절 끝에 자리를 잡았어도 편히 쉴 수 없으니 이보다 더 기구한 운명이 어디있으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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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할 게 많은 5월은 가정의 달과 아내와의 결혼기념일까지 겹쳐 바쁘지만 그래도 여행은 늘 즐겁다.

제주도는 해마다 일 년에 한 번은 가는 곳이지만 갈때마다 색다른 정취와 추억을 만들고 온다 테마파크 에코랜드라는 곳을 갔는데 넓고 넓은 곶자왈 원시림을 기차를 타고 에코브리지역, 레이크사이드, 피크닉가든, 라벤더 그린티 그리고 로즈가든역에서 맘에 드는 역에 내릴 수 있다 실컷 구경하다가 순환하는 기차를 타고 돌아오는 것인데 아름다운 숲이 좋아 참 인상적인 제주도 테마파크였다. 지디카페로 유명하다는 몽상드애월이라는 카페를 갔다. 몽상드애월 카페에서 한담해변을 바라보며 커피 한 잔과 케이크 한조각 ~ 근데 먼 사람이 일케 많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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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하던 벗이 동행하지 못하고 나홀로 3차 국토종주를 했다 (낙단보에서 달성보까지). 계획은 낙단보에서 합천창녕보까지 가는게 목표였지만 저질 체력과 (구체적으로 말하면 엉덩이가 아파...ㅋㅋ) 서울로 올라오는 시간을 맞줘야 했으므로 낙단보 - 구미보 - 칠곡보 - 강정고령보 - 달성보까지만 이딩했다. 일요일 아침 동서울 터미널에서 8시출발 고속버스를 타고 상주종합터미널에 내려 낙단보를 찾아가는데 네이버 길찾기에서는 20km거리였지만 가도가도그길 또다시 가도 다시 그자리 같은 곳을 3번이나 돌아.....ㅠㅠ 정말 낙단보 도착하기전에 내가 죽기 직전이었다 .급기야 낙동대로 25번 국도를 타고 씽씽달리는 차들과 경쟁하며 위험을 무릅쓰고 37km 돌고 돌아 드뎌 낙단보에 도착했다. 이번 자전거 국토종주는 초반부터 진을 다 빼고 시작하게 된 것이다 

낙단보에서 구미보를 지나 칠곡보에 도착하니 날이 어두워져 숙박하기로 하고  5km 정도 왜관읍으로 이동하여  모텔에 숙박하는데 아무리 허름한 여관이라 해도 이불을 덮고 잘수 없을 정도로 더러워 옷을 입고 잠을 잤다. 하여간 다음날 왜관시장에서 순대국 하나를 맛나게 먹고 다시 칠곡보에서 쭈- 욱  페달링하여  드디어 달성보 도착 . 달성보에서 현풍시외버스터미널로 이동하는 길에 <밥잘하는 집>이라는 기사식당에서 두루치기 하나를 시켰는데 어찌나 반찬도 많고 맛도 있어 1박 2일동안 먹었던 밥중에 최고였다. 이번 나홀로 자전거 국토종주는 총 라이딩 거리 160km. 무념무상. 목표가 있기에 생각없이 달렸다.

칠곡보에 도착하니 날은 완전히 어두워졌다 근처 식당에 들어가 순댓국을 시켜 맛나게 먹고 왜관읍으로 이동하여  여관을 잡았다.

여관에 들어가자 마땅히 자전거를  곳도 없어 망설이는데 주인장이 방으로 들여가라 해서 나와 함께 잠을 잔 애마 스캇 스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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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다고 얕보지 마라 !! 충청남도 홍성에 있는 용봉산은 381m 아주 낮은 산이지만 왠만한 높기만한 산은 저리가라다 왜냐하면 낮은 산임에도 불과하고 산 전체가 기묘한 바위와 봉우리로 이루어져 충남의 금강산이라 불릴 만큼 아기자기 하면서 멋진 모습의 기암괴석이 다 있어서 정말 아름답기 때문이다. 보는 각도에 따라 각기 다른 풍광을 볼 수 있다. 또한 정상에서의 예당평야와 수덕사를 품은 예산 덕숭산 서산 가야산 조망 또한 시원하다.

용봉산이라는 이름은 용의 몸에 봉황의 머리를 얹은 형상이라는 데서 유래했다. 남쪽 중턱과 서쪽 산록에 완만한 경사가 길게 이어지고 군데군데 소나무 군락이 있다. 장군바위와 백제 고찰인 용봉사, 보물 355호인 마애석불 등 많은 문화재가 곳곳에 남아 있다. 옛 문헌에 영봉사라고 기록되어 있는 용봉사는 지금 대웅전과 요사체 2동만이 남아 있다. 하지만 고려시대에는 절 크기가 아흔 아홉채에 달하고 불도를 닦는 승려수가 천여명에 이를 만큼 큰 절이었다고 한다. 용봉산을 낀 홍성 일대는 충절의 고향답게 만해 한용운 선사, 백야 김좌진 장군, 최영 장군, 사육신 성삼문 등의 생가와 9백의총, 위인들의 삶의 흔적과 백제 부흥의 마지막 보루였던 임존성 등 역사 유적지가 도처에 남아 있다. 더욱이 최근 개발된 홍성온천이 예산의 덕산온천과 더불어 온천 관광지로도 이름이 높다.

공 감 . 댓 글 . 구 독  !!  꾸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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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벗들도 없고 마눌님도 수상스키 탄다고 새벽부터 청평으로 가버리고 나홀로 산행을 하였다. 나름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면서 따라오는 사람없으니 쫒기는 일도 없이 그저 슬로우 슬로우 행복한 산행이었다.마리산·마루산·두악산이라고도 불리는 마니산은 해발고도 469.4m의 산으로 강화도에서 가장 높다.정상에 오르면 경기만과 영종도주변 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정상에는 단군 왕검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마련했다는 참성단있는데 지금도 개천절이면 제례를 올리고 전국체육대회의 성화가 채화된다. 

산행은 마니산입구 - 참성단 - 정수사 -  버스정류장 (산행시간 : 휴식포함 4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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